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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 통영 여행 ) 삼도수군통제영

空空(공공) 2019. 9. 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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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을 가면 한번은 반드시 들러 봐야 할곳이다.

바로 삼도수군통제영이다

삼도수군 통제영 : 사적 제402호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지금의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 (보물 제293호에서 국보 305호로 승격 지정),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하다가 일제시대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당시 건물 중 남아있는 것은 세병관 뿐이나, 최근 관공서와 주택이 있던 통제영터를 일부 정비 복원하였다. 

1678년(숙종 4) 제57대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영문 주위의 산 능선을 따라 높이 1장 반(약 4.6m), 둘레 1만 1730자(약 3.6㎞), 성가퀴 707개 규모의 평산성(平山城)을 쌓았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의 통영성에는 4대문(大門)과 2암문(暗門) 그리고 3포루(鋪樓)가 있었고, 세병관을 위시하여 100여 개의 관아가 있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강점된 뒤 세병관을 제외한 대·소 관아 100여 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렸고, 그 자리에 학교, 법원, 검찰, 세무서 등이 들어섰다.
1975년 이후에 세병관 및 주변 지역을 정비하고, 199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유구를 확인하였다. 통제영 건물 중 현존하는 것은 보물 제293호로 지정된 세병관 뿐이며,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受降樓) 1동이 있다. 수항루를 지나 우측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2호인 두룡포 기사비(頭龍浦 記事碑)와 비각 건물이, 좌측에는 매표소 및 관리사 건물이 있다.
통제사 내아인 운주당(運籌堂), 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건물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 선자방) 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있다.
그 밖에 파취헌, 분뇨정 등 지역에는 충렬여자중학교와 충렬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고 있는 등 대부분의 지역에 공공건물이 들어섰고, 주변 일대는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망일루

광해군 3년 제 10대 우치적 통제사가 세웠으며 영조 45년 제128대 이국현 통제사가 화재로 소실된것을 다시 지었다

일명 세병문이라고도 하며 통행 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커다란 종이 있어 종루라고도 하였다.

소실되었던것을 2000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좌청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건물로 대변좌청이라고도 하며 제54대 신여철 통제사가 1689년에 우청과 좌청으로

분청했다고 한다


산성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등이 근무했던 곳으로 숙종 44년 제 83대 오중주 통제사때 건립하였던것으로 그후

소실되었던것을 발굴, 유구와 문헌에 의하여 최근에 중건하였다.

백화당

선조 36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건립하였다, 중국 사신등의 손님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인데

비장은 지방 장관및 중국 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 장관이 임의로

임명하였다

잉번청

숙종 44년 제 66대 이세선 통제사가 건립하였으며 통제영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등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던곳이다


느티나무

둘레는 5M이며 수령은 400년 이상 되는걸로 추정을 한다.통제영 창건 당시 심어진걸로 생각이 된다

기삽석통

세병관 앞뜰에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커다란 2개의 돌기둥으로 정조 10년 제 142대 류진항

통제사가 세웠다. 원래는 세병관 좌우 앞뜰 2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서쪽 1기만 남아 있다

통영 앞 바다가 보인다

통제사비군

통제사비군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나란히 4줄로 세워 놓은것을 말한다 

이 통제사비군운 통제사가 부임하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후에 이 지방 군,관.민이 세운 일종의 공덕비인데

표제도숭덕비.추사비.거사비,사적비,불망비,타루비,,유애비,선정비등으로 다양하다.

내아군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영역이다.통제영 영역에서 중심에 자리하며 세병관 동쪽에 위치한다.

내냐군 내에는 운주당과 이순신 장군의 영당이자 관사인 경무당이 자리하고 그 우측으로는 살림채인 내아가

자리한다

중아의 관아와 달리 지방의 관아에서는 관리의 식구들이  살림하는 내아가 있어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공존하는

특징이 있는곳이다.

병고

선조 37년 제 6대 이경준 통제사때 통제영 설치와 같이 세워졌다.

통제영 병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현재 대포,창,검등 무기루를 전시하고 있다

운주당


삼도수군 통제영은 비교적 규모가 크다.

넓은곳이지만 꼼꼼이 둘러 보면 좋을것이다


☞ 8월 4일 아내,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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