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잘 아는건 아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다
열 다섯자에 불과한 시지만 어떤 시나 소설보다
많은 의미를 내게 주었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번주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학에 쓴"괴물"이라는 시가 재조명을 받고 그 시에 언급된사람에 대해 뉴스룸에 생방송
출연해 이야기 함으로써 그에 대한 경외심이 싹 달아났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시인의 시에 나오는 En선생은 누가 봐도 고은 선생이다
방송에선 실명을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그 다음날 포털,인터넷은 최영미, 고은으로 시끄러웠었다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에 많이 올랐던 한국의 국민 시인이다.
한국현대사의 중심에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네 차례나 투옥된 민주투사이기도 하고
민중과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하는 양심과 지성을 통해 드러낸 작가의 정신이 투철한 시인이라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의 이야기대로라면 이건 순간적인 실수가 아닌 고의적 행동이고 상습범이고 범죄에 준하는 일이다
고은 선생의 구차한 변명이 아닌 참회하는 사과가 기다려진다
그의 시 "그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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