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당일치기로는 참 먼길이다
250KM, 차로 꼬박 3시간 거리.
모처럼 친구들과의 가을 산행..
이번 목적지는 전북 고창의 선운사
그리고 도솔암,천마봉까지다
10월 29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연한 단풍은 아니었다
빠듯한 시간으로 여유로움은 없었고 오후들어 추워진 날씨 때문에 즐거움은 감소했지만 그래도
처음 왔다는 기대감과 친구들과의 시간으로 기쁜 하루가 되었다
조계종 24교구 본사인 선운사를 자세히 볼것인가, 도솔암까지 올라 2개의 보물을 볼것인가 잠시
생각하다가 많은 사람들에 치여 선운사는 보는둥 마는둥하고 도솔암을 올라 갔다
교구 본사 답사는 25개중 이번이 이제 10번째가 된다
선운사로 들어가는 입구 .막 단풍이 시작된듯 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보기 좋다
선운사 매표소 앞은 그래도 단풍이 좀 들었다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
유명하신분의 글씨라고 본것 같다
선운사로 들어선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정조 18년(1794) 임우상이 기술한 선운사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법명을 법운자로 한 진흥왕은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진흥굴 윗산에 중애암을, 만월대 아래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5년(1318)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고 공민왕 3년(1354)에 재중수하였으며 조선 성종 5년(1474)에 행조선사가 중창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무장태수 송석조가 원준대사를 통해 161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재건하였다.
선운사는 한때 89암자 24굴 189요를 갖춘 대찰로 억불숭유정책을 내세운 조선 시대에도 성종의 어실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으며, 태종 때의 사찰폐쇄령에도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보존된 대찰이었다. 금동보살좌상·지장보살좌상·선운사 대웅전·참당암 대웅전·도솔암 마애불 등의 보물, 동백나무숲·장사송·송악 등의 천연기념물이 있으며, 석씨원류 경판·영산전목조삼존불상·6층석탑·범종·약사여래불상·만세루 백파율사비·참당암 동종·선운사 사적기 등 보물 5점, 천연기념물 3점, 기타 지방문화재 등 총 19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 위키 백과에서 인용)
고창 선운사의 대웅보전은 보물 제 290호다
조선 중기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3년(광해군 5년) 재건하였다. 전면 5칸, 측면 3칸으로 긴 평면을 이루며, 단청 벽화가 뛰어나다. 단층 맞배지붕으로 전면 5칸에는 모두 빗살분합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대좌의 밑면에 기록한 묵서명에서 불상의 조성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로자나, 약사, 아미타라는 삼불상의 존명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어 비로자나 삼불상의 도상연구에 기준이 된다. 그리고 1633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와 17세기 전반기의 대표적 조각승 무염과 그의 문하승(門下僧)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정확한 조성주체가 밝혀져 있고, 대형의 상임에도 불구하고 조각적·종교적 완성도가 높은 우수한 작품이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검단정
검단선사기 이곳에 선운사를 창건하였다 해서 쉼터를 만들었다
장사송 천연기념물 제 345호
도솔암 선운사에서 약 3.5km 1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제 280호)
고창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高敞 禪雲寺 兜率庵 金銅地藏菩薩坐像)은 청동 불상 표면에 도금한 불상으로 선운사 도솔암에 모셔져 있다. 머리에는 두건(頭巾)을 쓰고 있는데, 고려 후기의 지장보살 그림에서 보이는 양식이다.
이 보살상은 선운사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과 두건을 쓴 모습, 목걸이 장식, 차분한 가슴표현 등에서 서로 닮았지만, 이마에 두른 띠가 좁아지고 귀를 덮어내리고 있지 않으며 용모 등에서 수법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지장보살은 다른 불상들과 달리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으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둥근 얼굴은 단아한 인상이며, 목에서 어깨로 내려가는 선은 부드럽다. 상체나 하체 모두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띠를 매고 배가 들어가는 등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옷은 배부분에서 띠매듭을 지었고, 다리에는 간략한 몇 가닥의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을 왼무릎에 올린 모양으로 발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들어 작은 수레바퀴 모양의 물건을 잡고 있다.
고려 후기의 불상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이 보살상은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작품이다.
( 문화재청 누리집 인용 )
평판적이고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일자로 도드라지게 나타낸 입술 등으로 얼굴 전체에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3개의 가느다란 주름이 있기는 하지만 상체와 머리가 거의 맞붙어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상체는 사각형인데 가슴이 넓고 평판적이어서 양감없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고,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치마의 띠매듭이 선명하게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무릎 위에 나란히 놓은 두 손은 체구에 비해서 유난히 큼직하고 투박하여 사실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월출산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특유의 마애불 양식이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게 되어 있는 대좌는 상대에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으며, 하대에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무늬를 표현하였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가슴의 복장에서 동학농민전쟁 때의 비밀기록을 발견한 사실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
천마봉으로 가는 계단
천마봉에서
진흥굴
신라 24대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머물렀다 한다
돌아가는 길에 뜨끈하게 어묵탕을 끓여 먹었다 ( 취사가 가능한 휴게소에서)
멀리까지 가서 단풍도 보고 문화재도 보고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였다
다음번은 게절을 달리 해서 동백이나 꽃무릇을 보러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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