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종택을 보고 이육사문학관을 보려고 갔는데 공사중이다 (퇴계 종택에서 3KM
거리였다 )
별수 없이 돌아섰다..오는중에 퇴계 선생의 묘소를 지나쳐온게 생각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표시판에서 조금 올라가니 봉분이 하나 보이는데 퇴계선생의 며느리 봉분(봉화금씨)이다
이 봉분에도 일화가 있다
그래서 사후에라도 다시 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고 싶으니, 내가 죽거든 반드시 아버님
묘소 가까운 곳에 묻어다오."
이는 퇴계 선생의 맏며느리인 봉화 금씨가 남긴 유언이라 한다.
"상대방이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나도 예의를 지키지 말아야 되겠는가!
우리가 만약 그런 하찮은 일로 말썽을 일으킨다면 며느리가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
이 말은 봉화 금씨를 며느리로 맞이하기 위해 상객(上客)으로 갔던 퇴계선생이 자신의
가문이 빈한하다하여 당시 봉화 지방에서 행세께나 하던 금씨 문중 사람들로부터 심한
냉대를 받고 돌아오자 분개한 문중 사람들을 달래면서 한 말이라 한다.
( 봉화금씨 문중 카페에서 인용)
며느리 묘소에서 가파르게 100M쯤 올라가니 선생의 묘소가 보인다
선생의 묘소에 대한 글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퇴계 선생의 유계(遺戒)에 따라 신도비(神道碑)와 의물(儀物) 등은 일체 세우지 아니하고,
오직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묘비 만이 서 있을 뿐이다.
묘비에는 선생의 자명(自銘)이 새겨져 있다.
나면서 어리석고
자라서는 병도 많아
중간에 어찌하다 학문을 즐겼는데
만년에는 어찌하여 벼슬을 받았던고!
학문은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벼슬은 마다해도 더욱더 주어졌네
나가서는 넘어지고
물러서서는 곧게 감추니
나라 은혜 부끄럽고
성현 말씀 두렵구나
산은 높고 또 높으며
물은 깊고 또 깊어라
(........)
조화 타고 돌아가니
무얼 다시 구하랴.
퇴계선생의 며느리 묘소
퇴계선생의 묘소
비석이 옆으로 세워져 있다
유언에 비석을 세우지 마라 하셔서 그렇다 한다
전면에 안동호수가 바라 보인다
퇴계 선생이 보시는 하늘은 어떨까
누워 보았다..맑은 하늘
퇴계 선생 묘소 아래에는 수졸당이라고 있었다
수졸당은 동암 이영도(東巖 李詠道, 1559~1637)와 그의 아들 수졸당 이기(守拙堂 李技,
1591~1654)선생의 삶이 간직된 종가문화를 잘 지켜가는 고택이다.
수졸당은 “하계종택” 또는 “동암종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암은 영특하고 포용력이
있어 “대현의 후예답다”는 칭찬을 들었으며, 퇴계 선생으로부터 늘 “나의 계보를 이를
아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형 안도가 일찍 세상을 뜨자 큰집을 돌보며 둘째 아들을 성장시켜 혼인과 동시에 큰집으로
보내 퇴계종가를 보존한 인물이다. 그는 전란 중 어려운 백성을 구호하고 있는 사람들의
재산을 모아 군량미를 조달하여 이름을 떨쳤다.
지금의 수졸당은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해체될 위기에 있던 것을 현재 종손이
사비를 들여 현재 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으나 동암이 분가하던 시기인 17세기경에 재사는 18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 형의 살림집과 오른쪽으로 ‘-’자형이 수졸당 건물이다.
하계마을은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이어 경(敬)의 자세로 학문에 매진한 전형적인 안동선비의
모습을 간직하고, 안동의 향토문화를 선도해온 대표적인 마을이다.
조선후기, 민족의 수난을 당하자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를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마을이다. 정신적 지도자의 책임을 다하여 모범을 보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갖은 고초를 겪으며 죽음을 선택하거나 죽음을 무릅씀으로써 도산(陶山)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이웃 원촌마을에서는 ‘청포도’와 ‘광야’의 시인 육사(陸史)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을사늑약(을사늑약) 때 24일간 단식하다 순절한 향산 이만도, 여성운동가 김락(金洛)여사,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주관한 이중업(李中業), 단식 준절한 이중언(李中彦), 3.1예안 만세
운동의 이비호(李丕鎬), 만주항쟁의 이원일(李源一), 한말 의병 이만원(李萬源),
군자금 모금활동을 한 이종흠(李棕欽) 등 우리 민족의 혼을 일깨우며 온 몸을 던진
독립 운동가들이 살았던 곳이다. ( 안동체험관광에서 발췌)
憶陶山梅 도산 매화를 생각하다
湖上山堂幾樹梅 호숫가 도산서당 몇 그루 매화꽃이
逢春延停主人來 봄철을 맞이하여 주인 오길 기다리네.
去年已負黃花節 지난 해 국화시절 그대를 버렸으나
那忍佳期又負回 아름다운 그 기약 어찌 또 버릴까
丙歲如逢海上仙 병인년이 되어서는 바다 신선 만난 듯
丁年迎我似登天 정묘년은 나를 맞아 하늘에 오르는 듯
何心久被京塵染 무슨 마음 오랫동안 풍진에 물들어
不向梅君續斷絃 매화와 끊긴 인연 다시 잇지 못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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