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최대기업 삼성 ( 三星 ).
그 삼성이 시작한곳이 대구이고 그 시작한곳을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내가 어렸을때는 삼성보다 "돈병철"이라는 말이 더 회자되었었다
그 삼성과 대구의 인연은 조금씩 옅어지고 이제 야구단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옛 제일 모직터에 허울 좋은 창조경제단지가 기공된다는것뿐이다
대구의 관광 안내책자나 지도를 보면 간혹 "삼성 삼회 옛터"가 나오는것이 있다
접근성이 그닥 좋지는 않았는데 최근 대구 지상철이 완공되면서 그나마 나아 졌다
( 달성 공원역에서 아주 가까움)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은 28세때인 1938년 3월1일 그간 모은 자금으로 무역업을 하기 위해
대구 서문 시장의 끝자락( 지금의 북성로 공구 골목) 에서 삼성 상회를 차린다
지은 이름이다. 삼성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이같은
작명(?)과 무관치는 않아 보인다.
660㎡의 공간에 4층으로 지은 목조건물. 전화기 1대와 직원 40명 국수기계 1대가
삼성상회의 전부였다. 1층에는 사무실이, 2ㆍ3ㆍ4층은 국수 제조와 건조가 이뤄졌다.
인근에서 들여온 농수산물을 중국과 만주에 수출했다.
농수산물의 작황, 어황을 꼼꼼하게 조사해 수급을 조절하니 장사는 잘 될 수 밖에 없었다.
삼성상회 앞은 소달구지와 짐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수출 못지 않게 회사가 만들어낸 ‘별표국수’가 큰 인기와 부를 가져왔다.
당시에 대구에는 5개의 국수공장이 있었지만, 품질과 맛에서 별표국수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별표국수가 가격이 10% 정도 더 비쌌음에도 사람들이 별표국수만 찾았다고 한다.
단순히 싸게 많이 팔아서 시장점유율만 높이는게 아니라, 적절한 가격, 제대로된 품질의
1등 제품을 파는 삼성의 기업철학은 이때부터 태동됐다.
( 헤럴드 경제 2012년 6월 8일 기사에서 인용)
지금 삼성 상회 주위에는 크레텍책임이라는 공구를 만드는지역강소기업이 위치해 있다
삼성 상회 자리도 크레택책임이 대구시에 기부해서 그 자리에 옛터가 조성되었다
삼성이 이 주위를 인수하기에는 크레텍책임이 너무 커져 버린것인지, 아님 자리를 몰랐던 것인지
그 내막은 알길이 없다..
이 일대를 진즉 매입해 공원을 만들고 사회에 환원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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