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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영화/한국영화

인조실록을 찾아보게 만든 영화 남한산성

空空(공공) 2017. 10. 1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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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은 일단 좋은 영화다

예전에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이야기

해왔는데 영화 :"남한산성"은 생각을

넘어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한번 찾아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좋은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역사적 사실을 찾아 내려 가다 보니

조선왕조실록의 인조실록의 관련 내용까지 찾아 보게 되었다

 

인조실록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굴욕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 조선 왕조 실록 국역본을 옮겨 옴 )

용골대(龍骨大) 마부대(馬夫大)가 성 밖에 와서 상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侍從)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백관으로 뒤쳐진 자는 서문 안에 서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였다  ( 이하 중략 )

 상이 밭 가운데 앉아 진퇴(進退)를 기다렸는데 해질 무렵이 된 뒤에야 비로소 도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왕세자와 빈궁 및 두 대군과 부인은 모두 머물러 두도록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장차 북쪽으로 데리고 가려는 목적에서였다. 상이 물러나 막차(幕次)에 들어가 빈궁을 보고, 최명길을 머물도록 해서 우선 배종(陪從)하고 호위하게 하였다. 상이 소파진(所波津)을 경유하여 배를 타고 건넜다. 당시 진졸(津卒)은 거의 모두 죽고 빈 배 두 척만이 있었는데, 백관들이 다투어 건너려고 어의(御衣)를 잡아당기기까지 하면서 배에 오르기도 하였다. 상이 건넌 뒤에, 한(汗)이 뒤따라 을 타고 달려와 얕은 여울로 군사들을 건너게 하고, 상전(桑田)에 나아가 진(陣)을 치게 하였다. 그리고 용골대로 하여금 군병을 이끌고 행차를 호위하게 하였는데, 길의 좌우를 끼고 상을 인도하여 갔다. 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였는데,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 인정(人定)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서울에 도달하여 창경궁(昌慶宮) 양화당(養和堂)으로 나아갔다.

 * 여기서 상은 임금을 말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근대의 경술국치와 더불어 가장 치욕적인 역사를 황동혁 감독은 이병헌,김윤석이라는

두 배우를 절묘하게 화의와 척화의 상징으로 등장시켜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나는 어떤 편에 섰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실패한 역사에 대한 교훈과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현재의 정치구도

를 되짚어 보게 만들기도 하는 영화다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스틸컷 )

 

죽어서 삶을 택한 김상헌..그러나 실지로는 병자호란이 끝나고도 16년을 더 산 82세까지 장수하였다

61세에 사망한 최명길 보다 더 오랜 삶을 유지했다

그는 청나라에 압송되어 가면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시조를 남기기도 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이병헌이 연기한 최명길은 그 후 청나라에 잡혀있는 김상헌과 화해하였다

그는 환향녀 비하를 금지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고 근대에 이르서까지 화의를 주장한 탓에 "매국"

이라는 비난에 시달려 왔다

 

박해일은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는 청군에 홀로 맞서는 신궁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는 인조역을

잘 해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하기 싫었었을지도 모르겠다

( 한줄 줄거리 )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

                                                                                 ( 네이버 영화에서 옮겨 옴 )

살아 남아야 부자도 될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줬다 뺐는것은 안 준만 못하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 2시간 20분의 영화지만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나라면 어쨌을까"

 

덧 1. 삼배(궤)구고두례는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황제에게 절하는 예법이다

      삼궤구고두례를 행하는 방식은 “궤”(跪)의 명령을 듣고 무릎을 꿇는다. “일고두”(一叩頭),

      “재고두”(再叩頭), “삼고두”(三叩頭)의 호령에 따라 양 손을 땅에 댄 다음에 이마가 땅에 닿을 듯

      머리를 조아리는 행동을 3차례 하고, “기”(起)의 호령에 따라 일어선다. 이와 같은 행동을

      3회 반복한다. ( 머리에 피가 나도록 절했다 하는것은 잘못 전해져 오는 내용이다 )

   2. 삼전도비

    일명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47번지

    (당시 경기도 삼전도)에 있는 청나라의 전승비이며 송덕비(頌德碑)이다.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요구하여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다.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도 부른다. 이후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