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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안동 하회마을 류성룡의 집 충효당, 영모각

空空(공공) 2024. 9. 2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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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가면 여러 볼 곳이 있지만 잊지 말고 반드시 한 번 보아야 할 곳이

서애 류성룡의 종가인 "충효당"이다

충효당은 1964년 11월에 보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보물  안동 하회 충효당 (安東 河回 忠孝堂)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류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받고 있다.

 충효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이다. 

 행랑채는 8대손 일우 류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을 앞면으로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 

 대청마루, 방,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돌보던 공간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또한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2칸의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한다.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충효당은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 시의 집은 아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한다.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에 지은 집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이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신 후, 선생의 문하생과 사림이 

장손(長孫) 졸재(拙齋) 원지(元之)공을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의하(宜河) 공이 확장한 

조선중엽의 전형적 사대부(士大夫) 집으로서, 대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52칸이 남아있다.



 충효당은 고택 체험을 하는 숙박도 하고 있다

 충효당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영항, 앤드루 왕자. 문재인 대통령등이 방문한 바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몀 식수-구상나무



 충효당 맞은편에는 영모각이 있다

 영모각은 임진왜란때 영의정으로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유물을 보존,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충효당 사랑채 오른편에 위치한다. 

 1966년 6월에 개관하였으며 1977년 6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신축하였다.

☞ 8월 3일 아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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