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버킷 실천하기/국보 탐방

구례 화엄사의 국보 (5점)

空空(공공) 2025. 5. 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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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

국보가 5점, 보물이 9점, 지방문화재가 2점, 천연기념물이 3종이 있다

이중에 국보 문화재만 별도로 소개를 한다  



 ▶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이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을 세워두었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형태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신라 문무왕17년(677)에 의상조사께서 조성한 것으로 이 탑의 높이는 6.36m이며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이다.


 석등의 윗 부분은 지금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 화엄사 각황전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 여래불상과 4 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 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 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 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국보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 화엄사 목조비로자나 삼신불좌상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1

  635년(인조 13) 조선 후기 유명 조각승인 청헌(淸軒, 淸憲)과 응원(應元), 인균(印均)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협업해 완성한 17세기를 대표하는 불교조각이다.

 ‘삼신불’은 법신(法身)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보신(報身) 노사나불(盧舍那佛), 

 화신(化身) 석가불(釋迦佛)을 말하며 화엄사상에 근원을 둔 도상으로서, 변상도나 사경(寫經),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작품으로는 유일해 조선 후기 불교사상사와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각으로 유일하게 표현된 

 삼신불(비로자나-노사나-석가) 도상이라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크고 

 중요할 뿐 아니라 예술적ㆍ조형적 수준도 당대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 화엄사 영산회괘불탱

 영산회 괘불탱은 우리나라에 3점의 국보가 있다 

  -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전체 1,208.0×769.4cm , 화면 1,013.1 ×732.3cm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들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손가락이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보가 가장 많은 사찰은 경주 불국사 (7점) 이며 다음으로 5점을 보유한 

 영주 부석사와 구례 화엄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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