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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空空(공공) 2024. 5. 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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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흐려 멀리는 가지 못할 것 같고 가까운 산을 친지들과 다녀오기로 했는데

선정된 곳은 성주의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는 선석산이다

태실은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를 넣어 두는 곳을 말한다.


2015년 찾았을 때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9년이 지난 지금은

그 주변으로 생명문화공원및 태실문화관이 조성 만들어지고 매년 5월 태봉안 봉송 행렬이

거행되고 있어 그때보다는 많이 알려진 것 같다

  ☞ https://xuronghao.tistory.com/202


 

세조의 잔인함이 느껴지는 세종대왕자 태실

전국 최고의 명당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나라 최대의 태실유적지인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았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것 같은데 태실생명문화공원이 조성되면 많이 찾을듯 하다

xuronghao.tistory.com

 

▶ 사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 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 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황유산포털에서 인용 )


  19기중 5기가 훼손되어 있는데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명의 왕자들의 태실이며 수양대군이 즉위하면서 다섯 명의 태실을 파괴하라 명했기 때문에 

  훼손되어 있다


   세종대왕은 아들이 18명이고 막내아들인 담양군이 1439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태실 군집에는 19번째 아들인 '이당'의 태실이 있다. 

   태실에 기록되기로는 1442년 7월 24일(음력) 생으로 기록되었으며, 1446년 이전에 요절하여 

   봉군되지 못해 기록에도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문화해설사 해설이 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이런 유적지는 해설을 들으며 보는 게 좋은데 말이다


 태실을 먼저 돌아 보고 내려가 태실 문화관을 관람했다

 
 그리고 성주에는 세종대왕자 태실 외에도 용암면에 태종태실과 가천면에 단종태실이 있어 

 이 지역이 명당임을 알려준다

 

☞ 3월24일 아내, 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