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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영화/한국영화

영화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그에 가리워진 장사 상륙작전

空空(공공) 2016. 8. 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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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역사적인 사실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이 있었기에 그리고

성공율 오천분의 일이라는 무모한 작전을 성공할수 있도록 헌신한 켈로 부대원들의

공이 있었기에 서울을 수복할수 있었다

 

그런데 보수 정치인은 이를 이용하고 제작자의 의도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용을 틀어간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않다면 160억이라는 제작비에 비해 스토리가 너무 얼기 설기하다

머리를  반듯이 빗어 넘기고 포마드를 바른 살찐 림계진 ( 이범수 분)의 모습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면서 (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이 된다) 차라리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장사

상륙작전을 영화화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 상륙 작전

 또는 장사동 상륙 작전은 1950년 9월 15일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이다. 작전명 174라고도 한다. 9월 14일 부산항을 출발한 이후, 9월 15일 06:00에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대한민국군의 학도병으로 구성된 772명이 문산호를 타고 장사에 상륙하여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이다. 인천 상륙 작전의 양동작전으로 실시되어 양동작전으로서는 성공하였다. 사실상 미8군에게 떨어진 명령이었으나 바쁘다는 명분으로 작전명 174을 대한민국 학도병들에게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총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772명 중 사망과 부상을 당한 학도병을 제외하면 모두 행방불명 상태이다. 원래는 3일간 상륙한 뒤 귀환할 예정으로 총기등의 물자도 3일치만 지급되었다. 그러나 문산호가 좌초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총알과 식량이 부족해진 가운데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후 고립된 학도병들을 구출하러 배를 보냈지만, 죽기 전까지 싸웠던 북한군(북한군 2개 사단 정예부대)에 의해 대부분 전사했다. 배가 상륙하면 배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학도병들이 상륙했던 배는 1997년 3월 쯤에 난파선으로 발견 되었다.                                          ( 위키 백과 인용)

경북 영덕에 있는 장사해수욕장 옆 장사 상륙작전 공원 조성이 지난 2013년 3월, 2014년 6월 완공을

목표로 기공식이 있었으나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예산문제와 안전 문제로 완공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일어나고 있다

                                         (  복원중인 장사 상륙작전 공원의 문산호 )

 

6.25 전쟁당시 맥아더는 70세로 노회한 군인이었다

그 나이에 맞는 닮은꼴 배우로 "리암 니슨"은 너무 고액이다

그에 기가 눌렸는지 많은 배우들이 제 기량을 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중에 박철민은 다른때와 달리 애드립이 별로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추성훈은 뜬금없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ㅋ

기왕 출연시켰으면 전후 설명이 있던지,,,

 

( 이번 한줄 줄거리 는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한다)

맥아더의 지시로 대북 첩보작전 ‘X-RAY’에 투입된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는  북한군으로 위장 잠입해 인천 내 동태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에 놓인

가운데   ‘장학수’와 그의 부대원들은 전세를 바꿀 단 한번의 기회,

단 하루의 작전을 위해  인천상륙 함대를 유도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에 나선다

 

인찬 상륙작전 성공에 밑거름이 된 그 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켈로 부대원의

전공은 길이 잊지 말아야 한다

 

영흥도에서 북한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자결한 고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것이다

 

덧 1) 담배가 가장 맛있을때는 무엇보다 식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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