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작곡가에 이어 통영의 대표적인 예술인 청마 유치환 선생의 문학관을 찾았다.
선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선생의 대표적인 시 "깃발'은 다 알것이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
청마문학관은 청마 유치환 靑馬 柳致環 시인(1908~1967)의 문학정신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 2월 14일 4,038㎡의 부지에 문학관(전시관)과 생가(본채, 아래채)를 복원, 망일봉 기슭에 개관하였다.
전시관(51평)에는 청마의 삶을 조명하는 '청마의 생애'편과 생명 추구의 시작을 감상하고 작품의 변천, 평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청마의 작품 세계'편, 청마가 사용하던 유품들과 청마관련 평론, 서적 논문을 정리한 '청마의 발자취'편, '시 감상코너'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마의 유품 100여점과 각종 문헌자료 35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청마생가는 통영시 태평동 522번지이지만, 생가 부지에 복원의 어려움이 있어 지금의 위치에 생가 및 문학관을
개관하였다 ( 청마문학관 사이트에서 인용 )
청마문학관은 09시부터 18시까지 개관하며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 신정,설날,추석 공휴일은 휴관이다
일반 개인 1,500원의 입장료가 있으며 청소년,어린이도 1,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이곳을 차량으로 방문하려면 청마문학관 주차장을 입력해서 찾아 와야 한다
청마문학관으로 입력 찾아 오면 산 윗쪽으로 안내를 한다.난 그래서 조금 곤역을 치루었다..
선생은 1908년 통영에서 태어나 보통학교까지 다니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부산에서 동래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일본,평양을 거쳐 부산에서 백화점 슨무를 1년쯤 하다 통영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 여러 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65년 부산상고 교장으로 취임 부산문인협회 회장으로 재임중 애석하게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했다.
청마문학관 가는길에서 본 통영 강구안
유치환의 대표시 깃발
청마문학관은 도입부와 세개의 주제로 짜여 있다
- 첫번째 주제인 "청마의 생애"코너에서는 청마의 생애를 연도별로 정리, "인간 유치환"에 대해 심도 깊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 두번째 주제인 "청마의 문학"코너에서는 시대별 작품 경향과 대표적 감상을 통하여 청마문학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이해를 돕고자 꾸몄습니다.
- 세번째 주제인 "청마의 발자취"코너에서는 청마의각종 유물과 관련 서적의 전시를 통하여 생전의 숨결과 채취를 입체적으로 느끼면서 고결했던 삶과 치열했던 문학정신을 총체적으로 표명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 사이트에서 )
청마 생가로 가는길
약방, 안방, 부엌, 마루 등을 갖춘 본채와 사랑방, 광, 측간으로 이루어진 아래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제는 달랐다..
소리없는 아우성,,참 멋진 표현이다..
☞ 8월4일 아내,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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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문학관, 생가를 잘 관리한듯하여 보기좋습니다. ^^
통영에 있는줄은 몰랐네요.
편안한 주말저녁 되세요~
잘 관리되고 있었습니다만 방문객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주 기분좋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깃발"이라는 시, 참 많이 읽고 외우고 그랬습니다.
학창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청마문학관, 이렇게 구성되었군요. 참으로 의미있는 견학입니다~
특히 종이문서와 자료들을 보게 되면 더욱 존경스러움이 나오겠지요~
"깃발"은 많은 분이 좋아하는 시인것 같습니다.
청마문학관은 제가 가본 몇 안되는 문학관중 가장 잘 꾸며 놓은 곳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통영에 유치환의 생가와 문학관까지 있다니
통영을 예술의 도시라 할만 하네요..
통영에가면 한번 들려볼만 하겠어요..^^
통영은 충무공의 도시인 동시에 에술의 도시인것 같습니다.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다 못보고 와 한번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곳도 있네요~
통영 가면 꼭 들어 봐야겠어요 ㅋ
통영 가면한번 들러볼만한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시인의 문학관이네요
대표적인 시가 "깃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생가답게 볼거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깃발이라는 시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얼핏 본것 같네요 ㅎㅎ
네 교과서에 실려 많은분들이 기억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분이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군요.
옛 시인의 문학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군요.
안타까운 일이죠..
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전망 좋은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기 빨 이라니 참 재밌네요. 깃발이라는 시와 통영을 떠올리면 전율이 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됩니다.
시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ㅎ
위인들의 삶은 발자취를 많이 남겨놓는 것 같아요. 작품도 그렇고 ~ 바다를 낀 풍경은 고향생각나게하네요
남길려고 남기는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됩니다.ㅎ
고향이 바다를 끼고 있으신가 봅니다.
통영 출신 문학예술인 많네요 교직에 오래 계신 분이셨군요 소리없는 아우성은 정말 역사와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역설적인 표현 같아요 계신 지역에 태풍 피해 없길 바래요!
여기는 태풍 피해가 없는것 같은데 다른 지역이 우려스럽군요..
지금 야구 보는데 류현진 선수 메이저 데뷔 첫 홈런 쳤네요..ㅋ
청마 문학관 리뷰 잘보고갑니다^^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대단한 표현이라 생각해요.
예전에 알쓸신잡 통영편이 생각나는 포스팅이었어요. ㅎㅎ
알쓸신잡 통영편을 다시 찾아 봐야겠습니다..ㅎ
유치환 선생의 생가가 통영에 있군요..
깃발이라는 시는 고다꾜때 정말 시험에 많이 나왔었지요...ㅎㅎ
잘 보고 갑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억을 하시는것 같습니다..ㅎ
저래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라는 말이 있나봐요.
...전 딱히 남기는 것 없이 공수래공수거로 떠날 것 같은데...^^;;
제 뒤를 따르십시오^^
유치환 선생님은 잘 몰라도 깃발이라는 시를 들으니 시는 바로 알것 같은데요.
통영에 많은 유명하신 분들이 계신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통영은 정말 예향입니다.
그걸 실감했습니다.
이곳은 저도 다녀온 곳이라 더욱 눈길이 갑니다.
유치환 선생님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욱 그분의 문학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이번 태풍으로 피해를 입지나 않았는지 염려됩니다.
건강하셔요.^^
이곳에 다녀 오셨군요.
접근성이 그리 좋은곳은 아니어서 찾으시는 분이 많지는 않으시더군요.
많은 분이 찾았으면 합니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학창시절 유치환님의 시를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지나고 보니...
이래서 시는 외워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그렇게 숙제로 외운 싯구절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나다니요.~~
앞으로도 시는 읽을 때에외워야겠습니다~^^
시는 외워야 하는데 완전하게 외우는 시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외울만한 시는 외워야겠네요..저도 ㅎ
유치환 선생께서 통영에서 태어나신지 몰랐어요. 예전에 그 분 시 참 좋아해었는데... 깃발...오랜기간 잊고 있다가 다시 보니 더 마음에 다가오는 아름다운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영에 유명 예술인들이 많이 났습니다
박경리,윤이상,김춘수등..
작품도많이 남기셨더군요..^^
통영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공수래공수거님을 통해서 요즘 구경 잘 하구 있습니다ㅎㅎ
언제 통영 여행 한번 다녀 요세요^^
윤이상 음악회할때.ㅎ
청마선생 지금 이시대에 유란을(유부녀)매일 찾아 다녔다면 아마도 치한이나 성희롱죄로 쇠고랑을 찼을지도 모른다 유부남(유치환)이 유부녀(유란)사랑한다며 따라 다녔으나 유란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그시대에는 사내들의 바람(?)을 이해하던 시절이었기에 망정이지 변태라 욕 먹지 않은것만도 아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