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정려각' 태그의 글 목록

'정려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10.20 ( 대구 달성 ) 현풍 향교.현풍 곽씨 십이정려각 (62)
  2. 2017.02.01 효자의 기준 그리고 하효자 정려각 (50)

추석을 앞둔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전 2시간의 짜투리 시간이 생겼다

 

뭐라도 해야 되는데..영화를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가지고 있는 지도를

보고 갈만한곳을 찾았다

 

오고 가고 1시간 보는데 1시간

적당한곳을 찾았다

 

대구 달성에서 안 가본곳 현풍향교와 그 주변 문화재들 안 찾아 본곳이 눈에 띄어 망설이지 않고

찾아 나섰다

( 현풍 향교 ) 대구시 문화재 자료 제27호

 현풍향교를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옛 교동에 다시 지었고 영조(재위 1724∼1776) 때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대성전은 영조 26년(1750)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다.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

현풍향교 정면 처음엔 문이 잠겨 있는줄 알았다

왼쪽 관리사는 잠겨 있었다

현풍 향교는 군더더기 없는 전형적인 향교 건물과 배치를 가지고 있었다

외삼문을 들어 가면 정면에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다

현풍향교를 1759년 현 위치로 옮긴 김광태 현감의 기적비 ( 업적을 기록한 비)

보통 내삼문은 닫힌게 대부분인데 감사하게도 여긴 열려 있었다

어느분의 안경일까?

대성전과 동무,서무

다음 찾아간곳은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이다

정려문(旌閭門)은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정려기(旌閭記)를 게시한 문을 지칭한다. 정여창 고택의 경우는 솟을대문의 홍살에 정려기를 걸었다. 정려문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다. 영광 연암김씨 종택에서는 대문칸의 중앙칸 한 칸을 2층으로 올려 효자기를 건 독특한 효자각의 실례로 이로 인해 문 이름도 삼효문(三孝門)이라고 하였다.
정려기를 대문에 걸면 정려문이라고 하고, 독립된 건물형태에 게시하면 정려각(旌閭閣)이 된다. 마을 어귀에 세워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는 경우는 정려각의 형태로 하고, 일각문을 설치하고 담장을 둘러 독립된 건물로 만들기도 한다. 정려각은 규모가 작은 단 칸 건물에 맞배지붕으로 하고 공포는 익공정도로 간단하며 벽은 홍살을 세워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정면만 홍살로 하고 나머지 삼면은 화방벽으로 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정려기가 효자 또는 효부에 관한 것일 경우는 효자문 또는 효자각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정려문은 없고, 정려각은 15건 정도가 있다. 정려각도 국가지정은 없으며 시도 유형문화재, 문화재자료, 민속문화재 등이 대부분이다

 

 (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 ) 대구시 문화재자료 제29호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포상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며 기리도록 하였다. 한 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서, 정려를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게 되자 며느리와 출가한 딸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때 병환 중에 있는 아버지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곽재기의 부인 광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만나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기에 선조가 정려했고, 곽홍원의 부인 밀양 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죽음으로써 남편을 보호하였기에 현종이 정려했다.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했으나, 남편이 죽게 되자 먹지 않고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이 정려했다.

건물은 앞면 1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려각 안에는 2개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 것이나, 12정려각은 그 유례가 흔치 않은 것으로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한 집안의 가풍을 대대로 또 인척들이 잇는다는건 참 어려운 일일것이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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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욜로리아 2017.10.20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경이 주인을 기다리네요~~^^
    또 주말이 되었네요. 빼꼼히 열린문을 열고 들어가보고 싶어요~~^^

  3. BlogIcon 시니냥 2017.10.20 12: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풍에 이런 곳이 있군요.
    관리가 되게 잘 되어있나봐요 정말 깔끔한 모습이에요.
    기회가 되면 방무해보고 싶네요^^

  4. BlogIcon 애리놀다~♡ 2017.10.20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이 향교를 소개해 주신 적이 있나요? 향교의 모습이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건물 모습이 낯익어요. 단정하고 깔끔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안경을 놓고 가셨는지... 지금 막 찾고 계신거 아니가 몰라요. ^^*

  5. BlogIcon 멜로요우 2017.10.20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풍주위에 저희 할머니댁이있는데 신기하네요! 깔끔하게관리가 잘되었네요!!

  6. BlogIcon 참교육 2017.10.20 1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대구에서 마산을 오가며 잠간 들려서 현풍할매 곰탕을 사먹기도 했는데...여기는 한번도 들려보지 못했네요.

  7. BlogIcon 즐거운 우리집 2017.10.20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정말 멋지네요.
    주말에 한 번 들려보고 싶네요 ^^

  8. BlogIcon 새 날 2017.10.20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녀오신 날 날씨가 유독 좋았던 것 같습니다.하늘이 아주 쾌청하네요. 역시 고즈넉하니 조용히 들렀다 가기 좋아 보이는 곳입니다.

  9. BlogIcon 『방쌤』 2017.10.20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역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볼만한 곳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덕분에 많은 곳들 잘 구경하고 있습니다.ㅎㅎㅎ

  10. BlogIcon 카멜리온 2017.10.20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요일 오전 2시간의 짜투리 시간을 또 이런 좋은 곳 방문하는데 쓰시다니.. 시간관리가 철저하신 분 같습니다. 저는 2시간 그냥 아무것도 안하면서 보내는게 99%라서....
    부지런하신 것도 본 받고 싶고 이런 곳들 찾아다니시는 것도 본받고 싶네요.

  11. BlogIcon 라오니스 2017.10.20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은 시간도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시는군요 ..
    저에게 2시간이라면 .. 그냥 아무것도 안할듯 ㅎㅎ

  12. BlogIcon 쫄마아프로만 2017.10.20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풍 곽씨관련 자료를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공수거님 덕분입니다^^

  13. BlogIcon 작은흐름 2017.10.20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향교가 참 멋스럽네요. 이런 향교들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전통문화 학교 같은 걸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후세에 물려줄 문화유산이 많은 것 같은데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게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14. BlogIcon 파라다이스블로그 2017.10.20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 이런 곳이 있다니..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깔끔한 모습인거 같아요! 향교는 약간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는듯 하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방문해보고 싶네요!^^

  15.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7.10.20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멋진 향교 아주 잘보고 갑니다^^
    행복가득 금요일 되세요

  16. BlogIcon Spatula 2017.10.20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요, 향교에서 가르치던 고급진 학문이 그립습니다.
    그저 얕은 지식을 암기하고 잊어버리고, 심지어 자기소개서도 암기하고 잊어버리고...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현실에 향교가 큰 울림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7. BlogIcon 언젠간날고말거야 2017.10.20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안에 자랑거리가 많은 댁인가 봅니다. 좋네요 ^^*

  18. BlogIcon 죽풍 2017.10.20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향교에 가면 공부거리가 많습니다. ^^

  19. BlogIcon 구뜰 2017.10.20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지방 향교가면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고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날 좋은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게 예쁘네요 ㅎ

  20. BlogIcon 방송/인터넷/전화 가입! 2017.10.20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요~ 날씨도 좋은데 저런 곳에 가보고 싶네요~

  21. BlogIcon veneto 2017.10.21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풍스럽고 멋지네요
    시간날때 한번 둘러보고 싶네요!

다니다 보면 정려각을 가끔 만나게

된다

정려각이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정문(旌門)을 세우고 표창하기 위해 건립한

상징적인 건물로 내부에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를 모신다

보통은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앞에

세우는것이 일반적이다

충신,열녀는 사당앞에 홍살문을 세우기도 했다

 

책을 읽다 효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작년 가을에 다녀 오고 올리지 못했던 하효자 정려각이

생각이 났다

하효자정려각(夏孝子 旌閭閣)

문화재자료 제18호    (1989. 6. 15 지정)
소재지 : 수성구 만촌동 389-97

 
   효자(孝子) 하광신(夏光臣) 정려비는 대구 경북 일원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의 하나로 고려 때 이부사랑을 지냈던 하광신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문을 세운 것이다. 고려 충숙왕이 그의 효행을 듣고 1327년 그가 살던 이 마을에 "이부시랑하광신지려(吏部侍郎夏光臣之閭)"라는 현판을 붙인 정문을 세우게 하였던 것이다.

    하광신의 정려가 세워진 곳은 달성 하씨들의 세거지였던 현재의 대봉동 수도산 근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버렸다. 그때 달성 하씨들은 당시 14세 소년이던 하인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희생되는 바람에 명맥마저 끊길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대구의 토족이면서도 지금 그 숫자가 매우 적다.

    현재의 정려비는 1781년(정조 5)에 만촌동 형제봉 기슭에 중건하였으나 일제시대에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헐려 현 위치로 다시 옮겨 진 것이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전면은 홍살창이며 뒷벽은 약50cm의 고맥이 위에 판벽을 설치했으며 양측면은 판벽위에 홍살창을 설치한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 대구 스토리에서 인용)

 

주택가 외진곳에 있어 일부러 찾아가기는 참 쉽지 않다

조선 시대에는 효자에게 "정문"과 '복호"라는 상을 내렸다

정문이란  홍살문이나 정려각을 이름이고 복호는 부역이나 군역,조세등의 호역을 면제해 주는것이다

효자를 선정한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부모에게 먹여 응급조치토록 한 "단지(斷指)"를 하거나

부모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내었던 "할고(割股)"를 한 사람들이 세간에 알려져 선정 되었다

또 부모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대변을 맛 보는 "상분(嘗糞)"도 있었고 "조문(蚤蚊)" 효행도 있었다

조문은 벼룩과 모기를 말하는데 부모와 함께 잠을 잠으로 밤에 설치는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유인해

부모는 물리지 않게끔 한 효도다    ( "조선 과학 실록 -이성규 저"  에서 일부 인용)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거의 같이 살지 않는 요즘

가슴 깊이 생각해볼 이야기다

 

'효"와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가시같은 가르침이기도 하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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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파란연필@ 2017.02.01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부모님 연세가 들어가시니 생각이 많아지게 되더라구요....
    2월 한달도 힘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3. BlogIcon 문moon 2017.02.01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효자정려각이 주택가에 있나봐요?
    옛날 효자로 선정된 예는 요즘세태와는 좀 거리가 있지요.
    다시한번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될것같네요.

  4. BlogIcon 애리놀다~♡ 2017.02.01 0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효자비는 주택가 한가운데 딱 있나 봐요.
    동네분들이 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하효자 정려각에 영향받아 지금도 이 동네에서는 효자들이 많이 나올 것 같구요. ^^*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7.02.01 14: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로변에 붙어 있는 주택가이긴 하나 좀 외진곳에 있습니다
      안내 이정표도 없고..
      이 동네에서 효자,효녀들이 많이 나왔을듯도 싶습니다
      어릴때부터 이것을 보고 교육을 받아왔다면 말입니다^^

  5. BlogIcon YYYYURI 2017.02.01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님 얼굴 자주 뵙고, 사소한거 챙기는게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한건 없으니까 후회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게 도리인거 아닌가 싶어요! ㅋㅋ

  6. BlogIcon 도랑가재 2017.02.01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자신을 반성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잘 보고 갑니다.^^

  7. BlogIcon *저녁노을* 2017.02.01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모님 안계시니..더 맘 아픈 노을입니다.ㅠ.ㅠ

    행복한 2월 맞이 하세요^^

  8. BlogIcon Bliss :) 2017.02.01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려각이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함이라는 걸 몰랐네요. 우리가 가끔 말하는 열녀문이 이런거군요. 부역이나 군역, 조세를 면제해주는 방법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정말 좋네요^^ 효행의 예를 들어보니 부모의 몸을 자신의 몸처럼 여기는 행동에 많이 의미를 둔 것 같아요. 저도 부모님께 뭘 해드렸나...되돌아보게 되는 글이네요. 항상 좋은 곳을 멋진 사진과 좋은 말씀으로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2월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로 이어지시길요^^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7.02.01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대에 들어 와서도 그런 취지의 행사가 있긴 한가 모르겠습니다
      간혹 TV로 부모님에게 효도하는것을 볼때 예전보다는 더 강도가 떨어지자 않았는가 싶기도 합니다
      점 더 적극적으로 찾고 또 지원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9. BlogIcon T. Juli 2017.02.0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의 사람들에게 일러줄 좋은 장소 같아요

  10. BlogIcon 새 날 2017.02.01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려각이란 게 있군요. 효부 효자를 기리기 위한 표식 같은 게 있다는 말은 간혹 들었는데 이게 일종의 그런 종류의 것이로군요. 자기만 아는 현대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1. BlogIcon 비키니짐(VKNY GYM) 2017.02.01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후손들이 정말 잘 지켜야할 문화 유산이라 생각해요 ㅋ

  12. BlogIcon 개인이 2017.02.01 1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효자 정려각이라는 곳이 있군요. 부모님 살아계실때 효도해야겠습니다. ^^

  13. BlogIcon 참교육 2017.02.01 1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효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겠지만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뭔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4. BlogIcon 까칠양파 2017.02.01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는내내 뜨끔뜨끔하네요.
    이래서 불효자는 우는가 봅니다.
    그런데 선조들처럼 따라할 자신은 없네요.ㅎㅎ

  15. BlogIcon peterjun 2017.02.01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 요즘은 효자, 효녀 이야기는 정말 듣기 힘든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저도 효자로 살고 싶었는데.... 참 그게 쉽지는 않네요.
    아버진 엄청 효자셨는데... ^^

  16. BlogIcon 탈리타쿰 2017.02.01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거 보면 왠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17. BlogIcon 둘리토비 2017.02.01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촐하고도 쓸쓸하게 있네요.
    의미를 읽으면서 이런 것을 본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효"라는 것,
    일상에서 세심해지는 부모님과 저 자신과의 관계가 된다면 좋겠지요.
    지금 어머니와의 살가운 대화와 나눔이 그저 좋습니다~^^

  18. BlogIcon écrivain inconnu 2017.02.02 0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지, 할고, 상분, 조문... 어느 것 하나 칭찬받아 마지 않을 일이 없네요.
    저 정도는 고사하고 같은 집에 모시려고조차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풍토가 되었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요양병원에 가둬놓는 게 일상이 된 요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화군요.

  19. BlogIcon 늙은도령 2017.02.02 0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효라는 개념이 많이 약해진 것은 자본주의가 만든 것이지요.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모든 것이 경쟁인 상황에서 개개인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효를 얘기하기도 힘든 시절입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고요.

  20. BlogIcon CreativeDD 2017.02.05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효도의 길을 멀고도 험하네요..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 살을..;;;
    에고고.. 오래전에는 치료하기도 힘들었을 텐데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일들이라
    저는 일주일에 한번이상 전화해서 안부전하는 걸로
    소박한 효를 실천해야겠습니다.^^

  21. BlogIcon 김치앤치즈 2017.02.08 05: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효는 분명 중요한 덕목이긴 하지만, 단지, 할고, 상분, 조문과 같은 조선시대의 효행은 그 정도는 너무 심한 것 같은데요.^^
    하지만 효와 거리가 멀었던 저역시 많이 반성하게 만드는 가르침입니다.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7.02.08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시절에는 그게 최고로보여 줄수 잇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돈을 들일수도 없고
      돈이 있더라도 제반 환경이 그러질 못햇으니..
      저 역시 그러힙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