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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부여 볼만한 곳 2

( 부여 여행 ) 구아리백제유적, 고봉민 김밥인, 부여 중앙 시장

부여에 도착해서 점심은 각자 해결이기 때문에 난 간단히 먹고 근처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집합 시간과 장소를 충분히 고려해서 멀리 가지는 않기로 했고 근처의 가 볼 곳을 지도로 찾아보았다 구아리 백제유적이 눈에 띈다 ▶ 충청남도 기념물 부여 구아리 백제유적 (扶餘舊衙里百濟遺蹟) 백제 때 유적으로 ‘천왕(天王)’이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천왕사 터로 추정하는 곳이다. 발굴 결과 백제 때 우물 2기가 발견되었으며 남북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북쪽 우물은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평면 4 각형에 깊이 270㎝이며, 위에서 깊이 70㎝ 정도 되는 남쪽 벽에 남쪽 우물과 연결되는 4각 홈통이 있다. 여기서 360㎝ 떨어진 곳에 있는 남쪽 우물은 평면 정 4 각형이고 깊이는 270㎝이다. 위에서 아래로 깊..

인상 깊은곳 2021.11.28

( 백제 유적 탐방 ) 낙화암 ( 백화정 ) ,고란사

승자에 의해 쓰여 잘못 알려져 있는 것 중의 하나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의 3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고 전해 내려져 오는 낙화암을 찾았다 수십 명이 될지언정 3천은 분명 아닐 것이다 백제보다 큰 나라였던 조선도 궁녀가 최대였을 때 천명을 넘지 않았었다 ▶궁녀의 수 : 왕실 구성원이 늘면 궁녀도 늘었고, 왕실 구성원이 줄면 궁녀도 감축되었다. 연산군 대에는 1000명이 넘었다고도 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듯하다. 인조 대에는 230명 정도, 영조 대에는 600명 정도였고, 18세기의 성호 이익은 당시 궁녀가 684명이라고 하였다. 조선 말 갑오개혁 때의 궁궐제도 개혁안에 따르면 ‘상궁 이하는 필요한 때에 따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대전 시녀는 100명, 대비전 시녀는 100명, 중궁전 시녀는 10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