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은 많을수록 불편할뿐 (空手來空手去) :: '두한필'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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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9.04 모명재 그리고 두사충의 묘소 (162)
  2. 2015.07.27 ( 대구 가볼만한곳 ) 모명재 (32)


벌써 모명재를 찾은게 이번이 3번째다

첫번째는 나혼자 갔었고 그 다음은 아내와 ,이번은 아내,처형과..

갈때마다 인원이 한명씩 늘어난다

이번은 모명재 관람이 목적이 아니었고 모명재 길을 걷기 위함이었지만 처음 방문하신 분이 있어 들르게

되었다

예전에는 없었던 모명재 관광 안내소도 생기고 해설자분도 계셨다.

마침 해설자 분이 나와 계셔 해설을 부탁드렸고 흔쾌히 해설을 해 주셨다


▶ 모명재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1(만촌동)에 세워져있는 모명재는 임진왜란당시 명나라 장수로서 

우리나라에 원군으로 왔던 두사충이 우리나라에 귀화한 후에 그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 것으로 고국인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대문에 달려있는 만동문이란 명판역시 

백천유수필지동[白川流水必之東]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이도한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모명재는 경산객사가 헐리자 그 재목을 사와 두사충의 묘소앞에 지은것인데 1966년 건물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모명재는 네모반듯한 대지위에 남향으로 배치되어있으며 대문을 통해 들어가면 

모명재가 앞쪽에 있다. 

정면4칸 측면2칸규모의 겹처마팔작 기와집으로 지어졌으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이고 

앞쪽에는 반칸규모의 퇴칸을 두고 있다.

조선에 귀화한후 계산동일대에 정착한 두사충은 명나라[중국]에 두고온 부인과 형제들이 생각이나 

최정산[지금의 대덕산]밑으로 집을 옮기고 명나라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대명동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 명정각

두사충의 재실이 있는 서쪽 100m 지점에 붉은 벽돌담에 둘러싸인 아담한 효자각이 명정각이다.

이 효자각은 두사충의 7대손인 두한필(杜漢弼)의 효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정에서 정려(旌閭)을 내린 것이다.

두한필의 호는 소남(小楠)으로 1823년(순조23년)에 태어난 1893년(고종3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행이 지극하였다. 나중에 조정에까지 소문이 퍼져 그의 사후에 정려(旌閭)가 내려오고 

종3품 관직인 통훈대부 규장각직각(通訓大夫 奎章閣直閣)을 증직하였다. 

현재의 명정각은 1912년 두사충의 재실인 모명재를 지을 때 함께 건립한 것이다. 이후 1966년 후손들이

모명재와 함께 보수 하였다.


명정각

만동문

모명재

모명재 관광 안내소와 해설사 선생님

신도비의 비문은 

이순신 장군의 7대손인 이인수가 지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두사충의 가까운 사이가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사람으로 임난이 일어나자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우리나라를 도우기 위해 나왔다. 

그가 맡은 일은 수륙지획주사라는, 지세를 살펴 진지를 펴기 적합한 장소를 잡는 임무였다. 

따라서 그는 이여송의 일급참모로서 항상 군진을 펴는데 조언해야 했고 조선과의 합동작전을 할 때 

조선군과도 전략 전술상의 긴밀한 협의를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당시 우리나라 수군을 통괄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아주 친했다.


임난이 평정되자 두사충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의 매부인 진린 도독과 함께 

우리나라로 나왔다. 이때 두사충은 충무공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숭정은 명나라 연호이다

북으로 가면 고락을 같이 하고/동으로 오면 죽고 사는 것을 함께 하네 성남쪽 타향의 밝은 달아래/

오늘 한 잔 술로써 정을 나누세

이순신의 시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는 해설사 선생님

이순신 장군과 술잔을 나누는 모습

정유재란도 평정되자 두사충은 압록강까지 매부 진린을 배웅한 후 자기는 조선에 귀화했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은 두사충에게 대구시내 중앙공원 일대를 주고 거기서 살도록 했다. 

두사충이 받은 땅에 경상감영이 옮겨오게 되자 두사충은 그 땅을 내어놓고 계산동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계산동 일대는 두씨들의 세거지가 되었는데 두씨들은 계산동으로 옮기자마자 주위에 많은 

뽕나무를 심었고 그 때문에 이 일대를 뽕나무 골목이라 부르게 됐다. 

러나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고향이 그리운 법,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는 두사충이었지만 

고국에 두고온 부인과 형제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두사충은 최정산(현재의 대덕산)밑으로

 집을 옮겨 고국인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일 초하루가 되면 

고국의 천자쪽을 향해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이후 나이가 더 많아지자 어느 날 자기가 젊었을 때 

대구 근교를 샅샅이 뒤져잡아 둔 묘터를 아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가마를 타고 묘터가 있는 고산(孤山)으로 향했다. 

그러나 워낙 쇠약한 몸이라 도저히 고산까지 가지 못하고 담티재에서 되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두사충은 아들에게 오른쪽의 형제봉을 가리키면서 저 산아래 계좌정향으로 묘를 쓰면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예언했다. 따라서 그의 사후 자손들은 두사충이 잡아둔 명당까지 가지 못하고 

묘소를 형제봉 기슭에 쓰게 되었고 두사충이 잡아둔 묘터에는 나중에 고산서원이 들어섰다.

      ( 이상 모명재 누리집에서 인용 )

두사충의 묘소


두번씩이나 조선을 도와준 책략가 두사충

그의 고뇌가 이해가 된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온다는데 중국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 7월 4일 아내,처형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대구 수성구 만촌동 715-1 | 모명재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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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N.Tik.P 2020.09.04 1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 번째나 방문하신 곳이로군요
    사진으로 보아도 매력적인 곳인데
    포스팅하신 내용까지 보자니
    한 번 방문해보고 싶어지네요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

  3. BlogIcon Za_ra 2020.09.04 1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주변에는 저런 유적지가 많이 없어
    유적지 갈라면 멀리 나가야 하는데, 잘 다니시는거 보면 부럽습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포스팅 보면서 역사공부 하게 되네요.

  4. BlogIcon sJSfam 2020.09.04 1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저는 해설가 선생님 이야기 들어야 이해가 쏙쏙 될것 같아요 ^^
    3번씩이나 방문하시고~~
    우리나라만이 가지는 전통건축물은 아무나 흉내 못낼 듯 합니다. 멋져요.

  5. BlogIcon 일억이 2020.09.04 1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장소 잘보고가요~~~공감!!

  6. BlogIcon 작크와콩나무 2020.09.04 1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7. BlogIcon Micro-Society 2020.09.04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들이 많이 방문한다니.... 조금 신기한게 이순신이 일본에서 유명한점도 그렇고 오히려 해외에서 우리 위인들을 더 많이 알아봐주고 한다는게.... 사실 많이 아쉽네요 ㅜ

  8. BlogIcon 드래곤포토 2020.09.04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9. BlogIcon 청두꺼비 2020.09.04 1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인물이 있는 줄는 전혀 몰랐어요!! 덕분에 잘 알고 가요. : )

  10. BlogIcon 신입사원다람쥐 2020.09.04 1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 사실 알고갑니다^^
    항상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11. BlogIcon 뽑기다운타운언니 2020.09.04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대구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항상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b

  12. BlogIcon 피터팬의 소풍 2020.09.04 2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면 명나라 장수들도 우리나라에 호감이 많았었나보네요.
    부인과 형제들을 놔두고 귀화를 했다니 그 이유도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문화재도 이렇게 이야기를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저녁되세요.

  13. BlogIcon 휘게라이프 Gwho 2020.09.04 2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거 가이드하셔도 되겠어요 ㅎㅎ
    오늘도 잘보고 가요 공수래님 ..^^

    한주도 고생많으셨어요~ ^^
    주말엔 푸욱 힐링하자구요 ㅎㅎ

  14. BlogIcon BG.Psychology 2020.09.04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으로 보기만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네요 ㅎㅎ 잘보고갑니다~

  15. BlogIcon 제나  2020.09.04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화한 사람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뜻을 담아 지은 거군요.
    조선을 많이 도와준 인물이라고 하니 왠지 정이 가네요.

  16. 2020.09.04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BlogIcon 오늘은 뭐먹지? 2020.09.04 2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곳도 있었군요.
    처음들어보는 이야기네요~

  18. BlogIcon ilime 2020.09.04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박이네요 역사를 잘 알게되었슴니다. 좋은 사진도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

  19. BlogIcon 가족바라기 2020.09.04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보면서 장소를 보니 더 느낌이 옵니다

  20. 2020.09.05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1. BlogIcon Raycat 2020.09.05 0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우리 민족 열명 가운데 세명..즉 30%의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온 선조를 두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말할것도 없고 네덜란드, 인도, 유구, 베트남, 몽골, 여진 위구르, 거란족과 흉노족,

 발해 유민 등 실로 많은 민족의 출신이 한반도에 들어와 한민족이 된 것이다.

 

그 중에 전쟁 중에 귀화한 장수들이 있다

이성계의 오른팔 여진족 이지란이 있었고  임진 왜란때 귀화한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이 있으며

정유재란때 눌러 앉은 명나라의 장수 두사충이 있다

 

두사충(杜師忠)은 중국 시성 두보의 2대 후손 기주자사 두교림의 아들이자 명나라 최고의 풍수지리가

1592년 임진 왜란때 원군으로서 공을 세웠고 벽제관 전투에서 대패 명나라 총사령관 이여송이

참수하려 했으나 조선 대신들의 설득으로 목숨을 구했으며 1597년 정유재란때 명나라의 수군으로

남해로 출전하였으며 이때 이순신 장군과도 우의를 맺었다

 

전쟁이 끝나고 풍수지리에 뛰어났던 두사충은 명나라의 운이 다했음을 알고 귀국하지 않고

대구를 정착지로 해 눌러 앉았다

그가 "하루에 천냥이 나오는 명당'으로 꼽은 곳은 후에 경상 감영이 들어 섰으며  경상감영이 들어선이후에는

계산동으로 옮겨 뽕나무를 심었고 ( 대구가 섬유 도시가 된 배경이 됨) 다시 거처를  옮기고

그곳을 대명동이라 붙였다 ( 대구에서 면적이 가장 큰 동네) 그리고 명을 그리워 한다는 뜻의

모명 (慕明)을 호로 삼았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그는 묻힐곳을 찾다가 기침 가래가 심히 끓어 발길을 돌린 고개 ( 담티 고개 )에서

가까운 형제봉에 묘자리를 쓰라 했고  그 자리가 지금의  모명재라는 재실과 묘소가 있다  ( 안내문 일부 인용)

 

이렇게 두사충은 지금의 대구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 모명재를 찾았다

 

모명재에서 형제봉으로 가는 등산로도 있다

그 입구이다

 

입구,깨끗하게 조성이 되어 있다

 

모명재 주위에는 베롱나무(백일홍)이 많다

두사충이 배롱나무를 좋아했다 한다

 

모명재 가기전 명정각이  있다

이곳은 두사충의 7대손인 두한필의 효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조정에서 내린 정려이다

 

 

종3품에 해당하는 통훈대부 규장각직각이란 벼슬을 증직하였다

 

 

부용이 아름답게 피었다

 

모명재 대문 "만동문"

모든 하천은 동쪽으로 흘러 간다는 백천유수 필지동 그 근본을 잊지 않겠다는 뜻

 

신도비 충무공의 7대손인 삼도수군통제사 이인수가 비문을 지었다

 

 

 

명나라에서 가져온 청석으로 다듬은 문인상

 

 

 

 

 

 

 

 

今日一盃情 ( 금일일배정) 오늘은 한잔 술로 정을 나누세

 

이순신 장군이 두사충장군에게 보낸 한시 "봉정두복야"에 나오는 구절이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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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봉리브르 2015.07.27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사충이라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그 외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명동이라는 이름이 명에서 온 것이군요.
    모명이라는 호에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가 있네요.
    배롱나무가 백일홍이군요.
    그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진분홍빛 꽃이 참 예쁘네요.^^

  2. BlogIcon 금정산 2015.07.27 0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여행에서 모명재 잘 기억했다가 함 가봐야 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3. BlogIcon 참교육 2015.07.27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사충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대구에 이렇게 가 볼 곳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4. BlogIcon 청춘햇살 2015.07.27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구에 살면서도 제가 모르는곳이 참 많은거같아요..ㅠㅠㅎㅎㅎ

  5. BlogIcon 뷸꽃남자+ 2015.07.27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저도 대구 많이 가보았는데 첨보는 곳이네요

  6. BlogIcon Deborah 2015.07.27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처음 알았네요. 멋진 곳을 소개해 주셨네요. 예전에 대구에 살았지만, 가보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군요.

  7. BlogIcon *저녁노을* 2015.07.27 1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8. BlogIcon 『방쌤』 2015.07.27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명재에는 또 이런 흥미로운 일화가 엮여있었네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9. BlogIcon 耽讀 2015.07.27 1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사충, 명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 운명이 다한 것을 알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두사충도 알았는데 조선 수구세력은 끝까지 명나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시대를 읽는 눈이 정말 없었습니다.

  10. BlogIcon 새 날 2015.07.27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 정비한 듯 깔끔한 곳이네요. 역사의 흔적으로 남은 곳은 나름의 사연이 깃들어 있으며 단 하나라도 배울 만한 게 있을 텐데 평소 그냥 스쳐지나기 일쑤네요. 반성해야겠습니다

  11. BlogIcon 세이렌. 2015.07.27 14: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하진 않아도 그 시절 나라를 위해 애써온 숨겨진 영웅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2. BlogIcon 까칠양파 2015.07.27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한잔 술로 정을 나누세.... 읽으면 읽을수록 입에 착착 감기면서 아주 좋네요.

    대구가 섬유도시가 된 이유가... 아하~ 두사충때문이구나 했어요.
    유적지에 가는 것도 좋지만, 재미난 역사를 알고 나서 더더욱 즐겁게 볼거 같아요.
    두사충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ㅎㅎ

  13. BlogIcon 나이스블루 2015.07.27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최근에 방영되는 징비록, 화정 같은 드라마들이 저의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하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14. BlogIcon 언젠간날고말거야 2015.07.27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이런 이야기 참 재밌습니다.
    이여송이 참수하려 했다, 참았으니 지금까지 흔적들이 남아 있네요.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어요.

  15. BlogIcon 강냉이. 2015.07.27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런 일들이 있었군요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

  16. BlogIcon 유라준 2015.07.27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사충이 명에서 귀화한 장수군요.
    역시 역사는 많이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