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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4 ( 경북 경산 ) 하양 향교 그리고 금호서원 (31)

 

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향교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이 대개는 있다

공자를 뵈러 갔다

 

경산시 하양에 있는 하양 향교다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107호 )

양향교는 조선 선조 13년(1580)에 처음 지었고, 영조(재위 1724∼1776) 때 크게 고쳤다. 순조

3년(1803)에 대성전을 수리하였으며 철종 13년(1862)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수리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의 위치는 명륜당 앞인데, 이 향교는 동재·서재가

명륜당 뒤에 있는 특이한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와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문화재청싸이트에서 인용)

 처음엔 문이 잠겨 있어 밖에서만 보고 가려 했으나 그 옆으로 문이 열려

 있어 운좋게 보고 올수가 있었다 ( 향교를 지키시는 분이 계신듯 했는데 외출중이었다)

 

 

하양 향교를 둘러 보고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호리의 금호서원을 찾아 나섰다

 

 금호서원 (문화재 자료 449호 )

금호서원은 태종·세종조의 유교정)를 대표하는 명신인 경암 허조(敬庵 許稠)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1684년(숙종 10)에 하양현 금호동(현 하양읍 금락리)에 건립된 후, 1724년(경종 4) 사이동(현 하양읍

서사리)으로 이건하였으며 1790년(정조 14)에 사액되었다. 이후 1871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고, 그 자리에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가 1913년 경덕사(景德祠)와 수교당(修敎堂)을

 현위치(부호리)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원의 배치는 외삼문을 중심으로 볼 때는 좌학우묘(左學右廟)의 배치라 볼 수 있으나

경덕사(사당)와 수교당(강당)의 축이 동일축선상에 배치되지 않고 향도 서로 달리하여 직교하고 있다.

 또 대지가 사당에서 강당방향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사당부분이 높아 사당을 중심으로 두 공간이

구획되어 상·하위공간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강당이 남동향하면서 외삼문인 존도문(遵道門)과

일직선으로 자리하고, 강당 우측에 서재가 있어서 강당 앞마당에서 볼 때는 방형의 내정을 이루고 있다.
 강당인 수교당은 자연석 외벌대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1칸반 규모로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된 중당협실형 평면이며 전면에 퇴칸을 설치하였다. 대청과 좌측온돌방사이는

쌍여닫이문을 설치한 반면 우측방은 4분합들문을 설치하여 대청과 하나의 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성을 높였으며 배면 쪽으로 벽장을 설치해 두었다. 또한 좌측 온돌방에는 측면에 툇마루를 덧대고

 문까지 내어 측면에서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배려해 두었다. 대청 뒤편은 판벽과 쌍여닫이

골판문으로 폐쇄하고 툇마루를 덧대었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이고 기둥상부는 무익공

소로수장으로 처리하였다.
 경덕사는 자연석 기단을 다소 높게 쌓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건물을 세웠다.

 3칸 모두 통칸으로 하여 어칸의 배면 벽에 기대어 위패를 배설하고 바닥은 시멘트몰타르로 마감하였다.

창호는 쌍여닫이 띠장판문을 달고 양측면 중방 위로 광창을 두었다. 기둥은 모두 원주를 사용하였고

기둥상부의 양식은 초익공으로 살미가 약하면서 길게 내뻗었고 상부에 연화 연봉을 조각해 둔 앙서형이다.

창방과 장혀 사이는 소로로 받고 있다. 모로단청을 시채하고 측면과 배면 중방 상부벽에는 별지화를 그렸다.

상부구조는 제형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는 3량가구법이며 뜬장혀를 사용하였고 주칸에는 소로수장하였다.

 겹처마에 박공지붕이며 양측면에 풍판을 설치하였다.
 성경재는 강당 전면 우측에 동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정면 4칸에 측면 1칸의 납도리 홑처마 박공지붕

건물로 2칸씩 온돌방을 구획하여 좌측은 『구인헌(求仁軒)』우측은 『성경재(誠敬齋)』라 하였다.

 전면에 툇마루를 덧대고 있으며 매칸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고 배면 쪽으로도 문을 두어

관리사와 내왕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삼문은 전면에 계단을 다소 높게 설치한 후 어칸을 양협칸보다 폭을 다소 넓게 잡아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전면은 겹처마 무익공 소로수장으로 모양새를 갖추어 나름대로 정면성을 살리고 있다.

상부구조는 3량이나 어칸은 곡재의 대량을 사용하여 종도리 장여가 대량 몸에 끼워져 있고

 운두가 낮은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정보화시스템 사이트에서 인용)

 

 

 

 

 

 

 

 

 

 

 

 

 

관리하시는분이 흔쾌히 출입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들러 볼수 있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Posted by 삶.. 공수래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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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봉리브르 2015.09.04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향교를 이렇게 귀하게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이곳을 배움터로 삼아서
    옛 뜻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가르쳐주려는 사람도 배우려는 사람도 없을까요?
    아니면 가르쳐주실 분은 많은데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걸까요?

  2. BlogIcon 지후니74 2015.09.04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입니다.

  3. BlogIcon 백순주 2015.09.04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면화...
    요즘은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니 생각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그게 아쉽습니다. 여유도 쉼도 없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 안타깝습니다.

  4. BlogIcon 바람 언덕 2015.09.04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유학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많이 퇴색되고 변색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종교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민주주의도 그렇고....
    참, 후대세대들에게 면이 안 서네요...
    그나 저나 저렇게 고즈넉한 곳에 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쉼호흡을 하다 보면 맑아 지는 느낌이 날 것 같네요...
    하두 머리가 복잡해서리...ㅎㅎ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5.09.04 1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쁜것은 버리고 좋은것은 계승을 해야 하는데
      요즈음 그렇지 않은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요즘 어딜 가도 폰에 얼굴을 묻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건가요?

  5. BlogIcon 『방쌤』 2015.09.04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 시간 저 곳에서 흘러가는 시간들을 함께했을 향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곳을 거쳐갔을 많은 사람들도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처럼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치면서 지내지는 않았겠죠?
    잠시 한 숨 멈추고,,, 쉬었다가 가고싶어지네요^^

  6. BlogIcon 耽讀 2015.09.04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입니다.
    향교는 항상 배움을 연상시킵니다.

  7. BlogIcon The 노라 2015.09.04 1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시대 성리학이 잘 발달된 영남이라서 그런지 향교나 서원도 많군요.
    이런 곳들이 세월이 변하고 도시가 개발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정말 좋네요.
    그런데 요즘 교육은 배우는 것도 제대로 못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 없어요. ㅠㅠ

    • BlogIcon 삶.. 공수래공수거 2015.09.04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국에 향교가 230여개 ,서원이 600여개 있는데
      이곳 경북이 비중을 많이 차지 하더군요
      살아 생전 1/10 정도는 가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

      전 며칠 잡념이 많았었는데 닥치지도 않앗는데 미리 생각안하기로
      했습니다^^

  8. BlogIcon 금정산 2015.09.04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하양향교도 정말 크군요 ㅎㅎ
    대단합니다.

  9. BlogIcon 새 날 2015.09.04 1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호서원은 왠지 죄다 새로 만든 느낌이네요. 하양향교는 이름부터 독특해요. 그나저나 대구 근방엔 향교며 서원이 정말 많다는 걸 공수래공수거님 덕분에 몸소 체득합니다

  10. BlogIcon 늙은도령 2015.09.04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자는 자본주의에 의해 참 많이 악용됩니다.
    그의 진정한 가르침은 버리고요.

  11. BlogIcon 뉴론♥ 2015.09.04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월의 새로운 시작이네여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12. BlogIcon 까칠양파 2015.09.04 1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역마다 향교가 있었으니, 조선시대에도 학연이 존재했겠죠.
    같은 지역 항교 출신을 성균관에서 만나면, 엄청 반갑고 잘 챙겨줬을거 같아요.
    지방에서 왔다고 서울 아이들에게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똘똘 뭉쳤을거 같거든요.ㅎㅎ

    그런데 지역은 다른데, 향교의 느낌은 양천이나 하양이나 비슷한거 같아요.

  13. BlogIcon 오딧세잇 2015.09.04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글귀가 마음에 와닿네요 :)

  14. BlogIcon 유라준 2015.09.04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역의 향교가 잘 보존되어 있네요.
    공자님 말씀처럼 배우면서 생각을 잘 하는 것이 많이 어렵죠.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15. BlogIcon mooncake 2015.09.07 2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서울에 살다보니 향교 구경할 기회가 없었는데 요즘 공수래공수거님 덕에 향교 구경 많이 하네요^^ 내부까지 볼 수 있어 더 좋았구요.
    서울에 양천향교가 있는 것다는 것도 위의 댓글 보고 알았습니다.
    지금 양천향교 검색해봤는데 그동안 공수래공수거님 블로그에서 본 경북 지역의 향교들보다 규모도 많이 작은 것 같고, 최근에 개보수한 건지 너무 새건물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번 들려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