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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산_사찰

( 청도 여행 ) 대비사,대비지

空空(공공) 2017. 2.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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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쪽으로 넘어 가기전에

조금 점심이 늦어 지더라도

이쪽의 문화재는 다 보고 가기로

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또 언제 찾을지

모르는일

 

대비사 가는길 박곡길에 보물 제203호인

박곡동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는데

문이 잠겨져 있고 보호각속에 모셔져 있다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않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이 되고 문이 잠겨져 있음을 나름대로

이해를 했다

까치발로 탑과 전각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사진은 경상북도 문화재 사이트에서 가져 왔다

청도 박곡동 석조석가여래좌상

 

비교적 큰 저수지인 대비지를 끼고 구불 구불한 산길을 올라 가니 조용하고 아늑한 사찰이 나온다

정말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 대비사 : 전통 사찰 가-73호)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567년(진흥왕 28) 한 신승(神僧)이 창건하여 소작갑사(小鵲岬寺)라 이름했다고 한다.
이 신승은 557년 운문산에 들어와 지금의 금수동(金水洞) 북대암(北臺庵) 터에 초암을 짓고 3년 동안 수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과 골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이 놀라 우는 소리를 듣고 그 곳이 오령(五靈)이 숨어 사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중심부에 대작갑사(大鵲岬寺 : 지금의 雲門寺), 동쪽에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 이 절인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는데, 역사가 다 끝난 시기가 567년이었다고 한다.
589년(진평왕 11) 원광(圓光)이 중창하였고, 대비갑사(大悲岬寺)로 이름을 바꿨다. 고려 인종 때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이 중창했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했으며, 1950년 6.25를 전후하여 금천면민들의 성금으로 주지 응교(應敎)가 다시 대웅전을 중수했다.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兜率庵)과 옥련암(玉蓮庵)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물 제834호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것이다. 유물로는 많은 수의 부도들이 있는데, 이 중에는 소요 태능(逍遙 太能) 취운 학린(翠雲 學璘) 등의 부도도 있다.

                                                (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서 인용)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

대작갑사(운문사) 작압전에 모셔져 있는 사천왕 ( 통일 신라시대 )을 모태로 하여 오태현 작가가

조성

보물 제 834호 대비사 대웅전

조선시대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춘 건물로서 전체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공포도 견실하게 짜여져 있다.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잡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평방을 두고 그 위에 다포계의 공포를 구성하였다. 기둥사이에는 각각 2개의 공간포를 두었는데 그 간격의 정연함이 우수하다

근래 조성한 용두관세음 보살

먼훗날이 되면 문화재가 될수 있을까?

삼성각

다시 한번 대웅전을 보고

내려 오는길에 꽤 넓었던 저수지

대비지를 보고 심호흡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연의 소리뿐..

이 느낌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