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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대구 ) 광복소나무,첨백당-평광동 왕건길

空空(공공) 2016. 8.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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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당시 유일한 기념물이 대구 평광동에 있다는 사실을 얼핏 TV 방송으로 들었다

"평광동" 조금은 생소하다..그리고 그곳의 "광복 소나무" 역시 생소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대략 어딘쯤인지 알것 같았다

팔공산 자락이고 평광동 뒤로는 몇번 올랐던 적이 있는 "대암봉"이 있었다

일요일 오후..날은 덥지만 찾아 나섰다

 

천연 기념물 1호인 측백나무숲에서 한참 더 들어간다

예전에 이길로 조금 더 들어갈려고 했다가 그만둔 기억이 났다

그때는 가 보려 했던 이유가 "광복 소나무"가 아니었고 "첨백당" 이었는데

( 알고 보니 그게 그거다 )

 

평광동 입구에 보니 안내판이 있었는데 이곳이 팔공산 올레길 4코스(평광동 왕건길) 출발지다

오늘의 목적은 걷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광복 소나무"를 찾아갓다

평광동 입구에서 광복 소나무(첨백당) 까지는 약 1.4KM다

 

마을 입구 효자 강순항 나무 ( 왕버들 나무)

평광동은 사과로도 유명한가 보다

팔공산 올레길 (4코스 평광동 왕건길 ) 출발지 이기도 하다

 

"광복 소나무"는 일본에서 독립하던날 1945년 8월 15일 단양 우씨 문중의 청년들이

광복을 기념하고자 인근 백발산에 있던 소나무를 첨백당앞에 옮겨 심어 놓은것이다

이 나무는 6m의 높이에 둘레가 80cm로 수령이 110년이 넘는다

표지석은 동네 갯돌 ( 논 물막이 돌)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이 소나무는 정부 조사결과 국내 유일의 광복절 기념물로 공식 확인 되었다

또한 대구시는 2000년 대구시 보호수 ( 2-21호)로 지정하고 DNA를 채취하여 혹시라도 있을

소나무 제선충에 대비해 복제나무를 키우기로 했고 천연 기념물 지정을 추진중이라 한다

왼쪽이 처음에 세운 표시석

뒤에서 본 모습

광복소나무와 같이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1896년에 심어졌다

곱게 핀 무궁화..의미 있는곳에 피었다

소나무가 있는 첨백당(대구시 문화재 자료 제13호)은 선조때 난을 피해 이곳으로 복거한

단양인 우익신의 12세 손으로  부모의 병구환을 위해 단지하여 회생케한 효자 우효중과 구한말 벼슬을

버리고 숨어산 우명식의 절개를기리기 위해 고종 33년 (1896년)에 세운것으로 1924년에 중수하였다

첨백당이란 당호는 "잣밭골 (백전곡)을 우러러 보는 집"이란 뜻으로 지었다

( 대구 스토리에서 부분 인용)

 

내려가는길에 재실인 "경희정"과 우씨 선조를 봉향하기 위한 정자인 "와룡정"이 잇어 들러

보았다 ,와룡정은 훗날 서당으로도 이용되었다 한다

그리고는 마을 입구에 있는 효자 강순항 정려각(대구시 문화재 자료 35호)도 온 김에 찾아 보았다

동구 평광동 마을 앞 도로변에 있는 ‘효자 강순항 정려각’은 조선 후기 인물인 강순항(1745∼183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현판과 정려각이다.

강순항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매우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50여년간 부모에게 지극한 효행을 행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정려각은 조선 순조 30년(1830)에 그의 아들이 세웠다고 한다. 순조 16년(1816)에 경상도 관찰사 이존수의 건의로 통정대부에 임명되는 동시에 효자로서 포상을 받아 정려 현판을 내렸다. 순조 30년(1830)에는 나이가 100세에 달해 숭정대부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이에 따라 그의 부인과 조상 3대가 각종 관직을 거슬러 올려 받게 되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평광 사과 단지 답다^^

광복 소나무,평광동  진작 몰랐다는게 좀 겸연쩍지만 이제라도 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