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 다가오면 지역지에 관련된 기사가 올라온다
전태일 열사는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 났다
대구 남산동 작은 셋방에서 태어나 어릴때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대구의 명덕초등학교를
잠시 다니다 서울 동대문의 봉제공장으로 돈 벌러 떠났었다
몇 년전부터 (사)전태일의 친구들에서 전태일 열사가 살던 옛 집을 매입하기 위해
성금을 모았었고 올해 4월 옛 집을 복원하기 시작해 지난 11월 13일에
대구 중구 남산동 2178-1번지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 옛집’ 개관식 및
54주기 추모 행사를 열고 복원된 공간들을 공개했다
개관식 참석은 못했지만 개관 11일이 지난 일요일 오후 찾아가 보았다
전태일 열사는 한국의 현대사. 특히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나와의 연관성도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분명 나보다 한창 위 세대지만 그 살아온 굴곡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 시대의 암울했던 시기를 조금은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 전태일 열사 ( 1948년~1970년 )
대구에서 출생 1954년 서울로 이주 다시 1963년 대구에서 2년 초등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상경 1965년부터 서울 평화시장의 의류제조회사에서 보조, 재단사 등으로
일하였다
1969년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노동청에 진정을 하였지만, 노동자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잠시 건축 노동자로 일하다가, 1970년 9월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노동조건 실태 설문 조사를 하고, 정부, 언론 등에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후 다락방 철폐, 노동조합 결성 지원, 노동조건 개선 시위 기획 등을 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유명무실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거행하고
분신 항거하였고, 그 날 밤 숨을 거두었다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1970년대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그의 사진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고 잠시 묵념을 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눈앞에서 지나갔다
이 근처를 지나면 꼭 인사를 올릴 것이다
☞ 11월 24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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