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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버킷 실천하기/제주 올레길 걷기

( 제주 올레길 21코스 ) 별방진.신동코지불턱,각시당,지미오름(지미봉)

空空(공공) 2019. 4. 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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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21코스 걷는중에 눈여겨 볼것들이 몇군데 있다

조선 중종때 구축한 별방진이 그렇고 해녀들의 탈의실겸 휴게실인 불턱, 그리고 영등 할망에게 제를 지내는 각시당

표고 166M의 지미 오름이다

 

● 별방진 :

제주도 기념물 제24호. 1510년(중종 5) 제주목사(濟州牧使) 장림(張琳)이 김녕방호소(金寧防護所)를 이곳으로 옮겨 다시

축성(築城)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우도(牛島) 부근에 빈번히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었다. 성의 규모는 둘레 2,390척(약 72㎞), 높이 7척(약 2.1m)이었으며, 1848년(헌종 14) 목사 장인식(張寅植)이 중수하였다.
동·서·남 3문 및 문 위에는 초루가 있었으며, 성의 형태는 동서의 길이가 긴 타원형으로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였다. 성안에는 진사(鎭舍)·객사(客舍)·군기고(軍器庫)·별창(別倉)·대변청(大變廳) 등의 시설물이 있었으며, 병력으로 책임자인 조방장(助防將) 1인을 비롯하여 치총(雉摠)·성정군(城丁軍)·방군(防軍)·방포수(防砲手)·궁인(弓人)·시인(矢人)·봉군(烽軍)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1907년 군기고 혁파 이후 점차 성이 파괴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하도리 포구 공사로 북쪽 성렬이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현재 동·서·남쪽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1974년 4월 12일에 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별방진에 올라 우도쪽을 바라 보시는 분..

불턱

‘불턱’이란 바로 ‘불을 피우는 자리’를 뜻하는 제주어로,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물질에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던 공간을 말한다.

해안 마을 갯가에는 마을마다 ‘불턱’이 마련돼 있었다. 불턱은 바람막이가 될 만한 공터나 바위그늘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곳도 있었지만, 대개 돌담을 네모형이나 원형으로 쌓아 공간을 마련했다. 입구는 이중 돌담으로 터서 바깥에서

안쪽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했으며, 위쪽엔 지붕 시설 없이 트인 간단한 공간이다.

신동코지 불턱은 제주에서도 비교적 넓은 불턱이다

● 각시당

영등할망 (바람의 여신) 에게 해녀들과 어부 그리고 타지에 나가있는 신양민의 무사안녕과 풍요로운 해산물 채취를

기원하는 의례를 치르는 곳

 

● 지미 오름

종달마을 입구 동북방향에 있는 오름으로 산위 등성이는 원뿔모양의 동쪽 봉우리가 주봉(정상)이다. 북쪽에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고, 서북쪽 기슭에는 하도리 창흥동 양어장이 있으며, 이 지역은 철새도래지(둘레 약 3,700m, 면적 약 369,000㎡)로서, 겨울이 되면 겨울철새인 저어새, 도요새, 청둥오리 등이 날아와 겨울을 난다.

성산일출봉과 우도, 종달항과 종달리 앞바다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경사가 비교적 높아 편한 운동화를 착용해야 하며, 하산 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오름 꼭대기에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북서로 왕가 봉수, 남동으로 성산 봉수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지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이 제주섬의 꼬리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이고, 한자로 보는 뜻을 빌어 지미봉(地尾峰)이라 표기하며, 속칭으로는 '땅끝'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한경면 두모리를 섬의 머리 또는 제주목의 머리라 하고, 동쪽 끝의 이 오름을 '땅끝'이라 했다고 한다. 두산봉, 은월봉, 식산봉북사면에 말굽형 분화구가 북향으로 벌어진다.  ( 비짓 제주에서 )

 

올라가는 경사가 가파르다..올라가는데 20분소요

날씨가 흐려 조금 아쉽지만..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우도도 흐릿하게 보인다

●할망집 앞 불턱 : 모래 둔덕 형태

방망세기 불턱

날씨가 좋다면 지미 오름에서 보는 풍경 정말 멋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