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합천 여행 ) 월광사지 3층석탑,묵와고가,야천신도비

空空(공공) 2019. 2. 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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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여행을 하기로 하면서 관광 지도를 보고 제일 먼저 찾은곳은 월광사지 3층 석탑이다.

합천으로 오면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를 겪었기에 오늘 날씨는 좋겠다 싶었다.

 

사전 정보 없이 찾았는데  보물로 지정되기도 한 동.서 2곳의 석탑이다

보물 제 129호 합천 월광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陜川 月光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월광사터에 동서로 세워진 쌍탑으로, 모두 2층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윗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조각을 두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5단씩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두 탑이 거의 비슷하지만, 동탑은 전체의 규모에 비해 기단부의 구성에서 다소 많은 돌을 사용하였고, 서탑은 쓰러져 부서진 것을 최근에 세워 파손된 흔적이 보인다. 또한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도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놓았는데 서탑은 2개이고, 동탑은 1개이다.

통일신라의 탑이긴 하나, 서로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각 부분의 구성방법이나 양식이 약간 다른 점을 보이고 있어, 만들어진 연대가 조금 차이가 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 문화재청 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펜스가 있어 들어가지는 않았다..넘고 들어갈순 있지만 들어 가지 마라고 쳐둔 것일것이다

뒷편에는 근대에 세운듯한 사찰이 있는데 월광사다

월광사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솔지왕 ( 월광태자 ) 이 창건하였다 해서 월광사라 한다는 전설이 있다.

합천 향교를 보고 ( 합천 향교는 추후 포스팅 ) 묘산리 묵와 고가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06호 합천 묵와 고택 (陜川 默窩 古宅)

조선 선조때 선전관을 역임하였던 윤사성이 지었다고 전하는 옛집으로 그 뒤 자손이 대대로 살고 있다. 처음 지을 당시에는 집터가 600평이었고 명당의 산기슭에 의지하여 높게 지었다고 한다. 한때는 가업이 융성하여 집의 규모가 백여칸에 이르렀으며, 지금도 우람한 집이 자리잡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왼쪽으로 산기슭에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마당보다 훨씬 높게 기단을 쌓고 'ㄱ'자형으로 지었는데,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내루가 앞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사랑채의 오른쪽으로 중행랑채가 이어지고 거기에 중문이 있어 안마당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안채는 행랑채보다 한단 높은 기단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ㄱ'자형이다. 안마당 오른쪽에는 창고가 있으며, 안채 왼쪽 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당이 있다.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는 실례이다.

                                                    ( 문화재청 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 )

 

좁은 길을 어렵게 찾아 들어 갔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앞집에서 밭일을 하시는 할머니께 물었더니 한참 내려가 오른쪽으로 가면 들어갈수 있다고 하셔서 갔는데

역시 잠겨 있었다.

합천 지역에 많지 않은 고택이고 국가민속문화재여서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입구에 정부지정 한옥체험 표지판이 있기는 했으나

막상 올라가니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돌담길을 오르내려 봤으나..

조금 높은곳에 가면 내부가 보일까 싶었는데 안 보인다..

웬 넘이 와서 이리 저리 집을 살펴 보는거야 라고 지켜 보는듯 하다

밑으로 다시 내려가 옆 골목으로 올라 가니 정체 불명 (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 고가가 나온다

음..못 읽겠다

할머니가 말씀 하신 오른쪽 들어 가는문도 잠겨 있다

강양 향교를 가기전 반남박씨대종중 묘역과 재실을 잠깐 보고

옆 언덕에 있는 야천신도비를 잠깐 보았다

합천 화양리 야천신도비(陜川華陽里冶川神道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1호. 높이 210㎝, 너비 90㎝, 두께 30㎝. 중종 때의 명신 야천 박소(朴紹)의 신도비로, 그의 묘에서 동쪽으로 약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박소는 1493년(성종 24) 서울에서 출생하여 1519년(중종 14) 대과에 장원급제한 인물로, 벼슬이 사간원 사간에 이르렀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비문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이 짓고, 한호(韓濩)가 글을 써서 1590년(선조 23)에 건립하였다. 비를 보호하기 위해 1993년 반남박씨 문중에서 비각을 건립하였다.

조선 중기 사대부의 신도비로, 금석문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한석봉의 글씨

아침에 안개가 짙고 미세먼지가 좀 있었으나 바람이 조금 불면서 공기가 깨끗해져서 다니기가 훨씬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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