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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대구 근대로의 여행 ) 2코스 근대문화골목-진골목

空空(공공) 2018. 7. 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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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여행을 왔더라면 여기 근대로의 여행을 하면서 코스별로 샅샅이 돌아 볼건데 사는곳이

여기다 보니 띄엄 띄엄 하게 된다

 

약속이 중앙로에 있어 좀 일찍 시내에 나왔다가 약속시간까지 시내 여기 저기를 좀 보았다

 

이 일대는 예전 잠깐 소개한적도 있고 어릴때부터 다니던곳이라 비교적 친숙하다

2017/01/20 - [인상 깊은곳] - ( 대구 ) 진골목,염매 시장

 

이 골목은 경상감영과 연결되어 있어 서울의 피맛골과 같이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던 길로 역사에 남아 있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 와서는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바뀌었고 이 일대는 달성 서씨의 집성촌이기도 했다

 

서병국은 근대 시기 진골목에서 1000평이 넘는 대저택을 짓고 살았다. 또한 섬유회사인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정치인이자 체육인이던 신도환, 대구 소주의 대명사인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 평화클러치 창업자 김상영 같은

대구 부자들이 살던 진골목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그 면모를 잃고 만다.

진골목이란 이름에서 '진'은 경상도 말로 '긴'이란 뜻이다. 경상도에선 'ㄱ' 발음을 'ㅈ'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몇몇 있다.

밥에 싸먹는 '김'을 이곳에선 '짐' 이라고 하며, '(길이가) 길다'라는 표현을 '질다'라고 하는데 진골목 역시도 좁고 긴

그 골목의 지형을 본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 오마이뉴스 2010.11.19 기사 일부 인용 )

 

 

여성국채보상운동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대구가 낳은 현대 문학가 김원일의 1988년 작 <마당 깊은 집>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의 삶을 대구 종로거리와 진골목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실화 작품이다. 그 가운데 그려진 정소아과는 진골목의 건물 가운데 가장 운치 있고 흥미를 끄는 곳이다. 원래 이곳은 앞서 밝힌 부자 서병국의 자택이었던 곳으로서, 1937년 화교건축가 모문금이 설계, 건립한 유럽 스타일의 일본 건축물이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당시의 세계적 문화 격변을 짐작할 수 있는 이 집은 634㎡의 대지에 히말라야시더가 심어진 넓은 정원, 별채, 벽돌조 2층 양옥이 잘 어울려 있다. 곡선으로 처리한 담, 1층에 있는 일광실, 서양식 욕조 등을 통해 일제 강점기부유층의 생활 모습과 그 시절 근대 건축의 진수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대구의 근대건축물 가운데 양옥 주택은 거의 남지 않아 당시 건축 양식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북대 의대 출신인 정필수(91) 원장이 1947년 이 집을 인수받아 소아과를 개원하여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구의 역사와 함께 하였으나 고령인 정 원장의 건강상 이유로 최근 문을 닫았다. 이 건물은 가치를 아는 시민 연대 등에서는 시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박물관화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어릴적 여기 진료 받으러 왔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린다

미도다방은 따로 올릴 에정이다

못보던 건물이 생겼다 관광먹거리타운..

서병오 선생

제일교회

경북서원

타지에서 와서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골목일수도 있겠으나 추억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골목이어

 

그런지 내겐 정감있게 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