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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모명 뜻 2

모명재 ((慕明齋 ) - 조선에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재실

대구국립박물관을 가는길에 모명재를 한번 더 찾았다. 난 지난 2015년 7월 ( ☞ 대구 가볼만한곳 모명재 ) 한번 찾은적이 있지만 아내는 처음이라 한번 보여 주고 싶었다 모명재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로서 우리나라에 원군으로 왔던 두사충(杜師忠)이 귀화한 후에 그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 재실로 그의 호인 '그리워할 모(慕)', '명나라 이름 명(明)'자를 써서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이다 두사충에 대해서는 다시 대구 수성구청의 누리집에서 옮겨 왔다 중국 명나라 두릉(杜陵) 사람, 두사충(杜師忠). 두사충은 시성(詩聖) 두보의 후손으로 1592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조선에 원군 온 수륙지획주사(水陸地劃主事)였다. 지세를 살펴 진지를 삼을 만한 좋은 터를 잡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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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열명 가운데 세명..즉 30%의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온 선조를 두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말할것도 없고 네덜란드, 인도, 유구, 베트남, 몽골, 여진 위구르, 거란족과 흉노족, 발해 유민 등 실로 많은 민족의 출신이 한반도에 들어와 한민족이 된 것이다. 그 중에 전쟁 중에 귀화한 장수들이 있다 이성계의 오른팔 여진족 이지란이 있었고 임진 왜란때 귀화한 일본인 사야가 김충선이 있으며 정유재란때 눌러 앉은 명나라의 장수 두사충이 있다 두사충(杜師忠)은 중국 시성 두보의 2대 후손 기주자사 두교림의 아들이자 명나라 최고의 풍수지리가다 1592년 임진 왜란때 원군으로서 공을 세웠고 벽제관 전투에서 대패 명나라 총사령관 이여송이 참수하려 했으나 조선 대신들의 설득으로 목숨을 구했으며 1597년 ..

인상 깊은곳 201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