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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추억

그때 그 사람 -김재규 재판 소수의견 대법관들

空空(공공) 2015. 12.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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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12월 12일이다

내게 12월 12일이면 가장

생각나는건 1979년의 12.12

사태다

 

그때 나도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들을수

있었다

 

그 이후 10,26과 12.12에

대한 각종 서적을 탐독하였고

당시는 그때 그 상황을

시간별로 줄줄 이야기 할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12.12가 일어났던것도 당연히 10.26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장에서 지금은 한국일보 논설고문이 된 정병진 기자가 쓴 " 실록 궁정동 총소리" 란 책이

눈에 띄여 여기 저기 읽어 보다가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비교되는 상황이 잇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0.26후 체포되어 12월 4일부터 10차레의 1심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다음해 1월 28일 항소심이 잇었고 김재규를 비롯한 피고인 전원이

2월 8일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처음 대법원은 이 사건을 4심 합의인 제3형사부에 배정했다가 이견이 생겨

4월 10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로 넘겨졌다

( 당시 대법원장 이영섭을 포함해서 14명 )

그 후 5월 20일 사형이 확정되었고 그로부터 나흘뒤인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때 대법원 판사들중 민문기,양병호,임항준,김윤행,서윤홍,정태원 6명은 서슬퍼렇던

군부 정권하에서도 소신을 가지고 피고인 일부 또는 전원의 원심파기의 소수의견을

냈었다

 

소수 의견을 냈던 6분중 5분이 군부의 압력으로 사표를 냈고 ( 사표를 낸후 하루만에

수리) 사표 내기 거절했던 정태원 대법관은 다음해 법관 재 임용에서 탈락했다

 

민문기 대법관은 2009년 10월 5일 87세에 돌아가셨다

양병호 대법관은 2005년 3월 22일 역시 87세로 돌아가셨다

임항준 대법관은 2008년 2월 29일 캐나다에서 89살로 돌아 가셨다

김윤행 대법관은 1990년              70세로 돌아 가셨다

서윤홍 대법관은 대구에서 변호사를 하시다가 은퇴하시고 아직 생존해 계신다

정태원 대법관은 2004년 12월 21일 78세로 돌아가셨다

 

1분을 제외하고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그 분들의 의연함은 앞으로도 귀감이 될것이다

 

( 양병호 대법관의 소수 의견 내용중)

만약 다른 고위적 인사도 아닌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을 살해하였으니 정부를 전복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아니볼 수 없다는 소견이 있다면 권력의 정상이 대통령의 지위신분에 비추어 의당 그렇게 보아야할 것이라는 견해로 보겠는데 이는 지극히 소박하고 단순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대통령직에 있는 자연인 살해행위에 지나지 못한 것인지, 국헌문란목적의 살인행위에 해당하는 것인지가 중대관건으로 되어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적어도 이를 가려보기 위하여 좀 더 사실과 증거에 대한 실미를 더하여야 할 것인데 이를 다하지 아니하고 만연히 사실을 인정해 버리고만 심리미진 이유불비의 위법을 면할 수 없다.

 

 

이 영섭 대법원장은 1981년 퇴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본인은 지금부터 두해전 3월에 사법부 정상의 직을 맡았습니다.

취임초에는 포부와 이상도 컸습니다마는 ,오늘 과거를 돌아 보니 모든것이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 실록 궁정동 총소리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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