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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경주 여행 ) 월성 발굴조사지,경주 석빙고

空空(공공) 2017. 9.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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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향교를 건너 계림을 지나면

대규모의  유적 발굴 현장이 나온다

그 규모가 가히 대단하다

 

월성과 그 주변 유적은 1979년 문화재

관리국과 국립경주 문화재 연구소

( 1984년~2014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예비조사와 탐구조사를 거쳤고 2014년부터

총4지구(A~D)중 C지구에 대한 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더우기 내가 다녀온 다음날 ( 8월4일)부터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과 그동안의 발굴 과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전문인력팀 ‘월성이랑(月城以朗)’을 신설해 연중 상시 운영하기로 했다.한다


  * 운영 제외: 7일(1월 1일, 설․추석 연휴 각 3일)

한눈에 봐도 이 지역이 신라시대의 어마어마한 궁궐내라는게 미루어 짐작이 된다

 ( 월성) 사적 제 16호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여긴 대왕의 꿈 촬영지

월성발굴조사지 끄트머리에는 경주 석빙고가 있다

남한에 남아있는 6개 ( 안동,현풍,경주,청도,창녕,영산)의 석빙고는 전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 경주 석빙고로 지난번 청도,안동에 이어 3번째 석빙고 방문이다

( 경주 석빙고 ) 보물 제 66호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 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 당시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월성 발굴 조사가 언제 완료될지는 알수 없으나 다음번 방문은"월성이랑"을 신청해 해설을

한번 들어야겠다

월성이랑 해설 참가 방법

  참가 접수는 유선(☎054-777-5207)과 전자우편(ws_irang@naver.com)을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으며, 월성 교육 사무실에서 현장신청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전 신청의 경우는 원하는 시간에 해설과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현장신청은 하루 5차례 이루어지는 정기해설만 들을 수 있습니다.
  * 정기해설(5회/1회당 30분): 10:00, 11:00, 13:30, 15:00, 1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