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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경북 경산) 원효와 김유신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곳 불굴사

空空(공공) 2015. 9.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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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도 어느샌가 가버리고 맑고 깨끗한 산의 공기를 맡고 싶었다

팔공산 갓바위가 보고 있다는 팔공산 남쪽 기슭의 불굴사를 찾았다

 

( 불굴사) 나무 위키에서 발췌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구 강학리 5)에 있는 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90년(신문왕 10년) 옥희(玉熙)가 창건하였으며

사찰 옆에 석굴이 있는데 원효(元曉)가 수도하던 곳이라고 하며 김유신이 이곳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하다 천신(天神)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건물이 500동에 이르고 암자가 12곳, 물레방아가 8대나 있었고 

지금과 달리 반대로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리고 있었다. 1736년(조선 영조 12)

큰 비가 내려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진 뒤 송광사에서 온 한 노승이 중건하였지만

 결국 쇠퇴하여 되려 은해사의 말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절이 갑자기 쇠퇴하게 된 이유가 
설화로 전한다.

조선시대 들어 이 절은 유생들의 횡포에 크게 곤혹을 치렀다.

유생들이 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승려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점잖은 선비가 찾아왔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선비는 산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승려들이 그의 말을 믿고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 버렸다. 이 후 작은 암자만 복원하여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법당과 약사전·염불당·산신각·석탑·염화실·종무소 등의 건물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보물 제429호로 지정된 불굴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약사여래입상과

석등·부도 등이 전한다. 이 중 삼층석탑은 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7.43m이다.

약사여래 입상은 머리에 쪽두리 비슷한 모양의 장식이 있어 주목되고 6km 떨어진

팔공산 갓바위부처와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민간에는 영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976년 사찰 옆 석굴을 수리하다가 청동불상 1점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주불전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는 불상 없이 진신
사리탑이 있는데 1988년 인도에서

가져온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약사전의 약사여래입상(문화재자료 401호)은

전각 안에 봉안되어 있는데 호사가들은 약 6km 떨어져 마주보고 있는 선본사의

갓바위 부처님을 양(陽)으로 보고 이 곳 약사여래입상을 음(陰)으로 보아 한 쌍을 이룬다고 한다

 

 

 

 

 

 

불굴사 삼층석탑 보물 제 429호

2중 기단 위에 3층의 塔身部를 형성하고 정상에 相輪을 장식한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이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3개씩의 眼象을 장식하였으며, 甲石 윗면에는 높직한 호형과

낮은 각형의 괴임을 마련하였다.

塔身部는 각층 모두 屋蓋石과 塔身石을 1石으로 조성하였다.

탑신에는 隅柱가 정연하게 표출되어 있으며, 옥개석의 옥개받침은 4단씩이고

윗면에는 2단의 탑신받침이 각출되어 있다.

落水面이 완만하고 네 모서리의 轉角에 반전이 뚜렷하여 경쾌한 느낌을 준다. 총고 7.43m이다.

 

 

 

 

설악초

 

 

 

 

 

 

 

석조입불상

  • 지정사항 : 문화재자료 제401호(2001.04.30)
  • 약사보전 내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立佛像이다.

    화강암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불상을 세웠다.

    얼굴 부분이 몸에 비해 다소 크게 조각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굵고 둥근 육계가 솟아있고,

    相好는 훼손되어 이목구비를 다시 조각했다.
  • 굵은 목에는 三道가 표현되어 있고,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이 발목까지 덮고 있다.

    左手는 분실된 것을 수리하여 寶珠를 받치고 있다.

    불상 뒷면 목 아래쪽과 머리 쪽에는 큰 구멍이 있는데 이는 석제 또는 금속제의 光背를 부착하기 위한
  • 揷入孔으로 추정된다.
  • 총고 233㎝이다.

 

 

홍주암

    • 불굴사 경내에서 북동쪽 절벽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자연 동굴이 있고 입구 전면에

    • 붉은 글씨로 「紅珠庵」이라 음각하였다.

      굴 안에는 약수가 바위틈을 타고 내려와 모여 있는데 그 옆에 ‘我東第一藥水’의 刻字가 있다.

      이 굴은 원효대사가 불굴사 건립 이전에 수도한 석굴이라 해서 ‘元曉庵’ 또는 ‘佛庵’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김유신 장군이 통일을 염원하여 이 석굴에서 기도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1976년 석굴 내부를 보수하던 중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불상 1점이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이관하였다.

 

 

 

 

 

 

 

 

원효대사

정말 경외스러운 분이시다

 

많은 사찰에서 그의 손길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