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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청도 여행 ) 청도 읍성,석빙고

空空(공공) 2017. 2.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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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먹고 나오니

하늘이 잿빛이고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럴때는 정말 일기예보가 기가

막히게 잘 맞아 떨어 지는게

못내 야속하다 ㅋ

큰 비가 올것 같지는 않아 "청도 읍성"

을 둘러 보러 나섰다

 

청도에서는 그나마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가 싶은데 날씨탓인지 조용하다

( 청도 읍성 : 경상북도 기념물 제 103호 )

읍성은 지방관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된 성곽이다. 청도읍성이 처음 축성된 시기는 명확히 알 순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규모는 조선시대 선조 년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선조 때 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동래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에 성을 수축하였는데 청도군수 이은휘가 선조 23년(1590) 시작하여 2년 후 완공하였다. 둘레가 1,570보(약 1.88km), 높이는 5자 5촌(약 1,65m)이며 동문·서문·북문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수 차례 개축하여 읍성을 유지하여 왔고, 고종 7년(1870년) 남문을 건립하여 4문을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와 도로개설로 문루는 철거되고 성벽 일부는 훼손되었으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청도읍성은 성의 기저부가 전역에 걸쳐 남아 있고,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자세한 기록이 있어 발굴조사와 고문헌 고증을 거쳐 북문(공북루)을 중심으로 성벽과 옹성 등 성곽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 청도 읍성 안내 게시판 내용 )

청도 수령들의 공적비

금방이라도 많은 비가 올것 같은 날씨였는데..

형옥 즉 감옥

여기에 묶여 엎드려 곤장을 맞았겠지..

주리

엄청 아팠다

개구멍인가?

청도 석빙고 : 보물 제 323호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동·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문을 두었으며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환기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석비(石碑)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날짜와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계사(癸巳)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 위키 백과 인용)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는 경주 석빙고(慶州 石氷庫, 보물 제66호)·안동 석빙고(安東 石氷庫, 보물 제305호)·창녕 석빙고(昌寧 石氷庫, 보물 제310호)·청도 석빙고(淸道 石氷庫, 보물 제323호)·달성 현풍 석빙고(達城 玄風 石氷庫, 보물 제673호)·창녕 영산 석빙고(昌寧 靈山 石氷庫, 보물 제1739호)·가

석빙고 그러니 2012년 차태현 주연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내가 블로그를 하기전이라 감상평이 없다

 

냉장고가 없었던 그때..여름에 얼음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과시하고 뽐내는 힘의 상징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