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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전주 한옥 마을-경기전

空空(공공) 2016. 11. 4.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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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에서 제일 넓은곳이기도 하고

또 제일 많이 찾는곳이 경기전이다

이번 전주 한옥 마을 여행에서 우리 역시 경기전을 둘러 보는데 제일 많이 시간을 할애 했다

 

경기전에는 유달리 예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커플들과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경기전내의 여러 볼거리가 있지만 진본은 아니지만 태조의 어진과 예종의 태실,그리고 전주 사고와

어진 박물관은 보고 와야 한다

( 태조 어진 진본(국보 제317호)은 어진 박물관 수장고에 있어 볼수는 없다)

 

경기전은 입장료가 있고 오전 9시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양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고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각각 칭하였다.경기전은 선조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6년(1614년)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그리고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왕실 사당임을 감안할 때 신문(神門)이라고 호칭되며 홍살물 안쪽 내·외신문의 세 문을 통과할 땐 '동입서출', 다시 말해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와야 한다. 가운데는 태조의 혼령이 드나드는 '신도'이기 때문이다.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21년)의 일이다

경내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유형문화재 제2호)과 그의 22대조이며 전주 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肇慶廟·유형문화재 제16호)가 있다. 특히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왕조 어진들이 모셔진 어진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하마비 ( 유형문화재 제222호)

일반적인 하마비와 달리 암수 두마리의 동물이 비를 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

이곳에서 사진들을 많이 찍는다

사람 없는틈을 순간포착

홍살문

담장밖으로 전동 성당도 보이고..

수복청

동재,서재,제기고

보물 제1578호인 경기전 정전 정면3칸,측면3칸의 일자집이다

경기전 정전에 있는 태조 어진

젊은분들은 거의가 한복을 빌려 입는듯 하다^^

와룡매

전주사

사고는 고려와 조선시대 실록및 중요서적을 수장,보관하던곳이다

전주 사고는 1439년에 세워졌다 임진왜란 이전에 서울 춘추관,충주,성주,전주에 사고가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유일하게 전주사고만 묘향산으로 옮겨지고 나머지는 소실되었다

현 건물은 1991년에 새로 건립하였고 내부에는 조선왕조실록이 전시되어 있다

조경묘( 유형문화재 제 16호)

전주 이씨의 시조 이헌과 시조비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봉안한 왕실의 시조 사당이다

1771년에 건립하였다

어진 박물관 2010년에 개관하였다

조선태조 어진 (국보제 317호)

진본은 수장고에 있다

예종대왕 태실및 비 (민속 자료 제26호)

예종 대왕의 태를 묻은곳

조선 5백년 역사가 시작된곳이다

경건해진다..그리고 생각이 많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