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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안동 가볼만한곳 ) 도산 서원

空空(공공) 2016. 2.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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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분을 알게 모르게 매일 만난다

더구나 소액권의 인물이라서 더욱 친숙하다

 

천원권 지폐속의 인물 퇴계 이황 선생의 자취가 있는곳 도산 서원을 처음으로 찾았다

얼마전 TV에서 도산 서원의 전경을 보여 주는것을 보고 한번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찾게 되었다

 

우리나라 유학을 이야기할때 퇴계 이황선생을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고 성리학의

지주로써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선생의 흔적이 있는곳이다

천원권 지폐에는 선생의 초상뿐 아니라 선생이 공부하던 서당의 주변 산수를 그린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후면에 인쇄되어 있고 선생이 좋아하던 매화가

전면에 또한 인쇄되어 있으니 우리 모두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중의 한분일것이다

 

여기서 거리는 110KM 남짓이었지만 안동을 지나면서 외길이어서 그런지 가는데만 2시간이

더 걸렸다

아직 쌀쌀한 날씨였지만 깊은 산속에서 선생의 따뜻하고 커다란 학문의 열정을 느낀다

 

도산 서원은 1969년에 사적 제 170호로 지정되었다

2개의 보물 ( 전교당 보물 제210호,상덕사 보물 제211호)이 있다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

(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

·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도산서원은 주교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공간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과 중앙의 전교당(典敎堂)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되어 있다.
동.서로 나누어진 광명실(光明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동.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이다.

 

동편 도산서당건물을 ‘박약재(博約齋)’와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하는데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중앙의 전교당은 강학공간과 원장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자리하고 있다.

 

배향공간인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이 있는데 삼문을 경계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부속건물로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직사(上庫直舍)가 있으며 이는 홍의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1970년 설립된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이 있는데,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도산 서원 사이트에서 인용 )

 

 

도산서원입구의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비각 "시사단"

조선시대 지상별과를 보았던 자리이다..

저기를 가 보자고 하였는데 안 건너갓다 ㅡ.ㅡ;;

 

 

도산 서원의 전경

방송에서는 헬리캠으로촬영했는지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멋있었다

 

열정

네모지게 조성된석조 우물

 

 

 

도산 서당

선생이 몸소 제자를 가르치던곳이다

서원내에서 가징 오래된 건물로 선생이 설계하였다 한다

 

연꽃이 가득하다는 정방형의 연못 "정우당"이다

 

 

 

 

 

 

동광명실..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곳

오늘날의 도서관 같은곳..선생의 친필이다

서광명실

 

 

 

 

진도문 서당 영역과 서원 영역의 구분..도산 서당과 농운 정사의 진입로

 

동재인 박약재

원생이 기숙하던곳 ..동재가 서재의 선배가 기숙한다

 

서재인 홍의재

 

보물 제 210호인 전교당의 현판 도산 서원

한석봉의 글씨로 선조로 부터 사액 받았다 ..원본은 아니다

 

 

원장의 거실 한존제

 

 

보물 제 211호인 상덕사의 출입문

상덕사는 선생의 위패를 모셔 놓은 사당인데 문이 잠겨 있어 들어 가지 못했다

 

 

 

 

 

 

옥진각

퇴계 선생의 유물 전시관

 

 

 

역락서제

서당의 제자들을 위한 기숙사 현판은 선생의 글씨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을 함께 타고 태어났다.


이(理)는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본성으로 사단(四端)의 성격이다.
이(理) = 이성(理性)

*측은지심(惻隱之心) : 불쌍함을 앎
*수오지심(羞惡之心) : 부끄러움을 앎
*사양지심(辭讓之心) :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

이성(理性)을 거꾸로 하면 성리(性理) 즉 성리학(性理學)이 된다.


기(氣)는 얼굴에 나타나기 쉬운 칠정(七情)의 성격이다.
기(氣) = 감성(感性)

*희(喜) : 즐거워하고
*노(怒) : 노여워하고
*애(哀) : 슬퍼하고
*구(懼) : 두려워하고
*애(愛) : 사랑하고
*오(惡) : 미워하고
*욕(欲) : 욕심을 부리고


퇴계 선생은 이성과 칠정이 사이좋게 성장할 수 있다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이성(理性)과 기성(氣性)을 구분함으로써 이성을 키우기 위해 칠정을

억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노하지마라,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등(理貴氣賤). 퇴계는 그 방법으로 거경(居敬)과

신독(愼獨)을 택했으니, 제자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공경의 독서이며 혼자일 때는 흐트러짐을 경계하는 신독의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 기(氣)는 무조건 멀리하고 이(理)만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이(理)로서 기(氣)를 다스려 모든 사물을 냉철하게 운영해 나아가야한다는 조화의

원리를 극력 강조했던 것이다.            ( 도산 서원 사이트에서 인용)

 

선생의 이기이원론

 

이로써 기를 다스린다..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