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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성주 여행) 회연서원

空空(공공) 2015. 8.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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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서원 연합회 기준으로 경상북도 성주에는 10개의 서원이 있다

( 성주군 관광 안내에는 2곳밖에 나와 있지 않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회연 서원을 찾았다

 

( 회연서원) 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 51호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 5년(16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세원이다.

서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선조 16년(1583)에 정구가 회연초당(檜淵草當)을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숙종 16년(1690) 현판·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국가로부터 서원으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70년대에

복원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의 주향(主享)인 한강 정구는 외증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도학을 전수하고,

그 기반 위에 퇴계학과 남명학을 통합하여 새로운 학통을 세워 실학의 연원을 확립하였으며,

우주 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경서, 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예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대학자였다.
그는 평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으나,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여 부득이 관직에 나올 경우에는

주로 외직을 맡아 선정을 베풀었으며, 내직으로 우승지(右承旨), 공조참판(工曹參判), 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에 문목(文穆)의 시호(諡號)가 내려 졌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舊)사당, 강당, 동·서재, 신(新)사당, 전사청(典祀廳), 견도루(見道樓) 등이 있으며,

정구가 직접 조성한 서원 앞뜰의 백매원(百梅園)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으며,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 전시관과 향현사(鄕賢祠), 관리사가 있다.
사당에는 한강 정구를 주향(主享),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를 종향(從享)으로 모시고 향현사에는

신연(新淵) 송사이(宋師?), 용재(容齋) 이홍기(李弘器), 육일헌(六一軒) 이홍량(李弘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 동호(東湖) 이서(李) 등 한강 정구와 동년배로서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의

위판이 봉안되어 있다.                             ( 성주군청 관광 안내에서 인용)

                                            

현판 글씨는 한석봉이 쓴것이다 ( 문화재청 소개글에서)

근데 지난번 본 임고 서원의 선죽교 글씨체와는 다르게 느껴 지는것 같기도 하고...

 

 

한강 정구 신도비 ( 경북 유형문화재 제412호)

이 비는 조선 성리학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신도비(神道碑)이다.

비석은 인조 11년(1633)에 수륜면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인 창평산 묘소 부근에 세워졌다가 

한강 정구의 묘소를성주읍 금산리 인현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현종 9년(1668)에 현재의 위치인

회연서원(유형문화재 제51호)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4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이다

 

 

 

 

 

 

 

 

 

 

 

 

서원을 보고 서원 앞으로 흐르는 대가천에 잠시 내려갔다

생각같아서는 무흘구곡을 다 둘러 보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