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명대사 유적지를 돌아 보고점심 식사를 하기 전 무안의 표충사비를 찾았다
밀양의 표충사비는 밀양의 3대 불가사의 또는 3대 신비에 속한다
무안 홍제사 경내에 '땀 흘리는 비석'으로 알려져 있는 표충사비가 있고
만어사의 쇠소리가 나는 경석, 그리고 얼음이 어는 얼음골의 결빙지가
그것이다
▶ 밀양 표충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재는 돌담이 둘러진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에 세운 비로, 이의현이 비문을 짓고, 김진상이 글씨를 썼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의 글씨이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 ’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사명대사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진 결과라 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표충비가 땀을 흘렸을 때 일어난 국가의 큰 일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1919년 3.1 운동, 1945년 광복 직전, 1950년 6.25 전쟁 직전, 1961년 5.16 군사정변 직전
에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고 최근에는 2010년의 천안함 침모 사건, 2017년의
대통령 탄핵 심판 시기에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고 가장 최근은 209년에
땀을 흘렸는데 그 당시 코로나가 유행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온도와 습도 변화에 따른 결로 현상으로 추정하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한다
표충비의 재질,상징성 그리고 지역적인 위치에 의한 환경, 기후에 따른
현상에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신앙적인 믿음이 어울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가의 큰 일은 항상 발생한다
▶ 홍제사
홍제사는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사당 수호사찰이다.
그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이곳 무안에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이기도 하며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이 있던 곳으로,
홍제사는 사명대사가 입적한 뒤 백하암에 세웠던 표충사의 후신이다.
백화암은 병자호란으로 그 내부에 있던 사당이 퇴락하자 1710년(숙종 36) 밀양부사
김창석이 사명대사의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짓고 사당을 정비하였다.
이후 표충비각의 창건주로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선사가 나라로부터
표충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현재의 터에 표충비각을 세우고 백화암에 있던
사당을 홍제사터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인상 깊은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밀양여행) 위양지 하늘빛 라벤더& 블루베리 농장 (25) | 2026.01.21 |
|---|---|
| 기장 죽성드림세트장 그리고 황학대 (18) | 2026.01.12 |
| 경주 오아르미술관 (23) | 2026.01.05 |
| ( 밀양여행) 사명대사 생가지. 사명대사유적지 (22) | 2025.12.24 |
| (경주여행) 대릉원-포토존 (41) | 2025.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