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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서원_향교

( 군위 여행 ) 의흥향교,제동 서원,효령사

空空(공공) 2017. 8. 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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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극심했던 지난 5월

연휴 주말날씨는 좋았기에

지도 한장 들고

돌아 오는 시간을 고려하여

가 볼곳을 정한 다음 길을

나섰었다

 

이번엔 군위 의흥에 있는

의흥 향교를 찾았다

의흥으로 가는 28번 국도는

무슨 공사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트럭들이 쉴새 없이 지나 다녔다

 

K2 공군 이지 반대 깃발들과 커다란 트럭에서 떨어지는 분진, 미세먼지등이 아주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향교문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밖에서 충분히 볼수 있는 구조였다

( 의흥 향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 의흥향교는 1398년(태조 7)의흥면 읍내동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였다.

그 뒤 1614년(광해군 6)에 하리촌(下里村)으로 옮겼다가 1641년(인조 19)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대성전은 이때 건립된 건물인데, 1957년·1968년·1977년에 각각 중수하였다.

대성전의 평면은 전면툇간(前面退間)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면 반칸은 툇간으로 개방시키고, 후면은 6칸을 통간(通間)으로 처리하여 내부공간을 형성하였으며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막돌허튼층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민흘림기둥이다. 가구는 5량가의 주심포계(柱心包系) 건물이다.

대량(大樑) 위에는 접시받침을 놓고 포대공(包臺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게 하고,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을 세워 장여와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공포는 주심포(柱心包)로서 전면과 배면의 주두(柱頭 : 대접받침) 위에만 결구되어 있는데, 전면은 외이출목(外二出目)의 5포작(五包作)이며, 배면은 외일출목 3포작이다. 문얼굴은 전면에만 있는데, 전면 3칸에 각각 문틀을 내고 통판문을 달았다.

하방(下枋)에는 문을 달기 위해 둔테를 설치하였는데, 하방의 둔테는 하방재(下枋材)와 한몸으로 된 통둔테를 사용하였다. 대성전 안에 봉안하고 있는 위패는 임진왜란과 6·25 때 선암산(船巖山)의 바위굴에 옮겨두어 무사히 보존해 온 것으로, 경상북도의 향교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건립 당시의 위패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인용)

 

 

오천리앞을 지나는데 멀리 고택이 보이길래 멈춰 섰다

마을 입구에도 설명이 없고 지도에도 설명이 없다

걸어 올라갔더니 잡초만 무성한채 방치 되어 있다

후손들도 관리를 안 하는지 의아하다

나중 군위군청에 문의를 해 보아야겠다

( 후에 확인 해봤지만 군위군청 문화관광과에서는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

5번 국도로 돌아 가는길

지도를 보니 효령사,제동서원이 있다..찾아 들어 간다

( 제동서원)

고려 말에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장군당을 건립하고 단오날마다 제사를 올렸는데, 1850년 무렵 화재가 일어나 모두 소실되었다.
그 뒤 김해 김씨 후손들이 다시 사당을 지어 보존해 왔으나, 건물이 너무 낡아 1946년 옛 사당터에 새로운 서원을 창건하였다.

건물은 사당 숭무전(崇武殿)을 비롯하여 총 3동이 있으며, 해마다 단오절(음력 5월 5일)에 제사를 올린다.
서원 뒤쪽으로 계단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1칸 정도의 작은 규모인 장군당이 있으며, 안에는 장군당 유허비가 남아 있다.

입구의 자림지엔 한참 정자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제동서원 외삼문 .역시 닫혀 있었다

옆으로 올라가니 안은 충분히 보이고 저 뒤가 장군당인 모양이다

시원찮은 날씨에 마음까지도 시원찮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