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채널 추가 버튼
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군위 ) 양암정,광석재,상경사,칠탄숙강당

空空(공공) 2016. 9. 1. 05:00
반응형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문화재를 찾아 나선길

군위 북쪽지역에서 부터 관광 지도를 보며 훑어 내려 왔다

지도에는 가깝게 붙어있는것 같은데 실제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그리고 길을 잘못 들기라도 하면 빙 둘러 가게 된다

 

첫번째 찾은곳은 양암정이다

양암정은 굽이 굽이 돌아가는 위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정말 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아 가기 힘든곳이었다

( 양암정) 문화재 자료 제 216호

 이 건물은 서담(西潭) 홍위(洪瑋, 1559~1624)가 학우와 더불어 자연을 음미하면서 도학(道學)을 연마하기 위하여 세운 정자이다. 1612년(광해군 4)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소실되었으며, 1888년(고종 25)에 재건하였다.
 군위읍에서 북으로 약 12km 떨어진 풍광이 수려한 위천(渭川) 옆의 절벽끝에 자리잡고 있는데, 주위에는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정자에로의 진입은 우측의 길을 따라 뒤를 돌아 정면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정면에는 일각대문을 세웠으며 우측에는 '양암(兩岩)'이라 음각된 암석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고 아담한 규모인데 지붕을 팔작기와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사방 6자 가량의 작은 온돌방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다. 결과적으로 평면은 삼면의 마루가 방을 둘러 쌓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평면은 주로 전라도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형태이다.
 천연암반 위에 둥그스름하게 치석한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에는 원주, 측면에는 팔각주, 배면과 내진주에는 각주를 사용하는 등 여러 종류의 기둥을 사용하였다. 3량가의 간결한 구조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 경상북도 문화재 사이트에서 인용)

여기는 조금 걸어 오는게 낮다

차를 가지고 들어 오다가는 황망한 경우를 당할수도 있다^^ 

 

이어 찾은곳은 광석재다

한 여름이어서인지 잡초들이 많이 자라 있다..얼마 안 있어 추석이 되면 후손들이 깔끔하게

벌초를 할것이리라..

광석재 문화재자료 214호

고려가 망하자 평생을 두문불출하고 이름마저 려(麗)자로 고친 고려충신 이려(李麗)(1384-1455) 선생의 애국충절과 그의 증손인 우암(牛岩) 이세헌(李世憲)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로서 충주목사를 역임한 후손 이정기(李廷機)선생이 건립하였다.  
 
 광석재는 군위 - 소보간 도로에서 좌측으로 꺾어 올라간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모덕사(慕德祠)와 관리사(管理舍)가 있다 

                                      ( 군위 문화원에서 인용)

상경사는 칠탄숙을 찾아 가다 우연히 만난곳이다

찰방홍공 경어대선생과 정산 홍선생의 신주를 모신곳을 중건한곳이다

정산 홍선생은 서담 홍위의 동생인듯 하다

 

칠탄숙 강당은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지도 상으로 보나 폰의 앱으로도 부근이 분명한데 이정표도 없고 비슷한 건물도 보이질

않았다, 두어번 왔다리 갔다리 하다 보일듯 말듯 주택가 바로 뒤에 가려져 있는곳을 찾았다

문이 잠겨져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칠탄숙 강당 문화재 자료 215호

  이 건물은 임란공신이자 성리학자인 서담(西潭) 홍위(洪瑋, 1559~1624)가 그의 스승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높은 학덕을 후학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숙(書塾)이다. 칠탄(七灘)이란 일곱 여울로서 동구의 첫 여울을 열풍탄(烈風灘), 남계서원 앞을 남계탄(南溪灘), 그 위의 여울을 면곡탄(綿谷灘), 양천여울을 양천탄(良川灘), 내량동을 중심으로 흐르는 내량탄(內良灘), 태항산의 가마솥 모양의 봉우리 앞여울을 부봉탄(釜峰灘), 마지막 여울을 서담탄(西潭灘)이라 한다.
 마을 뒷편의 언덕배기에 남향하여 자리잡고 있는데, 정면의 산형대문까지는 10여단의 석계를 두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칸의 삼칸을 우물마루로 꾸미고 좌우협간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좌측방에는 전후의 2칸 사이에 4짝의 미서기문을 달고 후면에는 벽장을 설치하였으며, 우측방은 통칸 온돌방으로 하였다. 대청의 어칸 후면에는 장판각이 설치되어 있다. 장판각의 뒤쪽 벽면에는 다른 좌우칸과 마찬가지로 바라지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방형의 자연석을 빗쌓아 기단을 조성하고 자연석 주초를 놓아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은 어칸 전면의 2본만 원주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각주를 세웠다. 5량가인데, 대량 위에는 방형의 판재를 끼워 종량을 받게 하였으며, 종량 위에는 판대공을 세워 마룻대를 받는 간결한 구조이다. 건물 전체를 보아 전면주 상부의 보아지 외에는 전혀 초각을 하지 않는 극히 간결한 수법이다. 대청 후면에는 각 칸마다 미닫이 판장문을 달았는데 이는 후대에 설치한 것이고 문틀 사이에 가운데설주를 끼웠던 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여닫이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건물은 세부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소박하고 간결한 구조의 강당건물이며 문틀의 연귀수법이나 문틀에 있는 가운데설주 등이 고격(古格)을 잘 유지하고 있다.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사이트에서 인용)

                                          (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 )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구석구석 관리가 어려운것은 이해가 되나 그 소홀한 관리로

보존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