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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경주 여행 ) 대릉원 일원(미추왕릉,황남대총,천마총) ,숭혜전

空空(공공) 2017. 9. 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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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점심을 마치고

대릉원엘 들어갔다

 

대릉원 일원은 본래

사적 38호 경주노동리고분군(慶州路東里古墳群),

사적 39호 경주노서리고분군(慶州路西里古墳群),

사적 40호 경주황남리고분군(慶州皇南里古墳群),

사적 41호 경주황오리고분군(慶州皇吾里古墳群),

사적 42호 경주인왕리고분군(慶州仁旺里古墳群)

 

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경주 평야 한복판에 서로 인접해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한곳이다  ( 문화재청 누리집 인용)

 

대릉원 안에는 황남리 고분군의 미추왕릉, 황남대총,천마총등이 있다

대릉원이라고 불리는것은 삼국 사기에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그렇다

대릉원에는 왕,왕비,귀족들의 무덤 23기가 있고 복원하기 불가능한 능으로 추정되는 11군데에는

고분 발굴지 비석만 세워 두었다

 

대릉원 주차장 좀 협소한 생각이 든다

제일 크게 보이는것이 황남대총이다..황남대총 좌측편에 천마총

들어가는 입구총이 미추왕릉이다

능으로 추정되는것은 이렇게 비석만 세워 두었다

이렇게 세워진 비석이 11개

 

( 미추왕릉 ) 사적 제175호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 13대 왕인 미추이사금(재위 262∼284)의 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유례왕 14년(297) 이서고국(伊西古國)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竹長陵), 죽현릉(竹現陵)이라 부른다고 한다.

경주 황남동 무덤들 중 가장 잘 정비된 대릉원 내에 높이 12.4m, 지름 56.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이 있고, 담장을 돌려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무덤 앞쪽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794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내부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인용)

( 황남대총 )

  남북 120m, 동서 80m, 높이 23m의 거대한 쌍무덤이다. 남쪽 무덤이 남자, 북쪽 무덤이 여자의 무덤으로, 부부의 무덤을 붙여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남쪽 무덤이 먼저 만들어 진 것으로 밝혀졌다. 남쪽 무덤에는 유골의 일부가 남아 있었는데, 60세 정도의 남자로 밝혀졌고, 덧널에 20세 전후의 여자유골 일부가 발견되어 순장된 여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는 목걸이, 허리띠, 고리자루 칼을 착용하고 있었고, 덧널에 무기류, 안장 등 마구류, 은관, 금제 관장식 등이 묻혀 있었다. 북쪽 무덤은 남쪽 무덤의 봉분을 일부 파내고, 잇달아 만들었다. 순장은 없고, 금관, 목걸이, 허리띠, 귀걸이 등 신라 옛 무덤들 중 가장 많은 황금 장신구가 발굴되었다.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유물중에는 4개의 국보와 11개의 보물이 있다

( 황남대총 출토 유물 )

국보

보물

( 천마총 )

 천마총(天馬塚)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경주 고분이다. 지름 47m, 높이 12.7m이며, 1973년에 발굴되어, 천마도(국보 제207호), 금관(국보 제188호), 금모(국보 제189호) 등 11,297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유물 중에 순백의 천마(天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 밖에 서조도(瑞鳥圖)와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도 출토되었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중 4개가 국보로 지정되고 6개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천마총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다

국보

보물

일쓸신잡에 소개되었던 황리단길

여기에 숭혜전이 있다

신라 김씨 시조왕(始祖王)인 미추왕(味鄒王)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문무왕(文武王), 그리고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제전(祭殿)이다. 처음 신라유민들이 경순왕의 인덕(仁德)을 추모하여 영당(影堂)을 건립하고 경순왕을 봉사(奉祀)한데서 비롯되었는데, 임란때 영당이 소실된 후 1627년(인조 5)에 관찰사 김시양(金時讓)이 동천동에 사당을 건립하여 동천묘(東川廟)라 하였고 1723년(경종 3)에는 경순왕전(敬順王殿)으로 고쳤다. 그러나 산사태로 인하여 1794년(정조 18)에 현위치로 이건한 후 황남전(皇南殿)이라 하였으며, 1803년(순조 3)에는 계림에 유허비를 세우고 1814년(순조 14)에는 황남전 정문앞에 신도비를 세웠다. 1887년(고종 24)에는 미추왕을, 1888년(고종 25)에는 문무왕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증축하여 숭혜전으로 선액(宣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릉원 남편의 담장밖에 자리잡고 있는데, 배치는 외신문(外神門), 내신문(內神門), 숭혜전을 동일축선상에 놓았다. 숭혜전 좌·우에 각각 영육재(永育齋)·경모재(敬慕齋)와 제기고(祭器庫)·전사청(典祀廳)을 두었다. 영육재의 우측에는 함은당(涵恩堂)·가관실(假官室)·재관실(齋官室)·관리사를 두었으며 외신문 우측에는 경순왕신도비각을 세웠다.
 숭혜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조성한 후 원주형의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는데 주두상부에는 2익공으로 장식하였다. 익공상부는 봉두로 장식하였으며 어칸 2본의 기둥에는 익공쇠서 없이 용두로 처리하였다. 가구는 5량가이며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다. 종량하부에는 위패가 있는 후편쪽으로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아직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 지지 읺은 고분들

정말 경주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