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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안동 여행 ) 안동 석빙고, 월영대,선성현객사

空空(공공) 2017. 4. 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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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교 맞은편 산 조금위에

석빙고와 객사가 있다

관심을 안 가지면 지나치기가

쉽다

지난번 청도 석빙고를 봤던터라

모습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빙고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객사는 석빙고 좌측에 있는데

석빙고를 봤다면 같이 볼만한

건물이다

( 안동 석빙고: 보물 제 305호 )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특히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영조 13년(1737)에 지어졌다. 형태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넓은 땅에 강줄기를 향하여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입구는 특이하게 북쪽에 옆으로 내었다.

안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중앙에는 물이 강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로가 있다. 천장은 길고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모양으로 틀어올린 4개의 홍예(虹霓)를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고, 각 홍예 사이는 긴 돌들을 가로로 채워 마무리하였다.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안의 기온을 조절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바깥까지 연결하였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큰 편은 아니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특히 석빙고는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지금은 본래의 위치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바로 옆에 강이 흘러서 얼음을 운반하기가 아주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안내판이 좀 정비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오신분들의 시선을 끌어 많은 분들이 다녀 갈수 있도록....

청도 석빙고와는 좀 다르다

봉분식으로 쌓은 후 그안에 시설을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는 없었다

* 청도의 석빙고다

여기도 낙서가 보인다

월영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2호 )

월영대는 자연 암벽을 다듬어 "월영대"라는 석자를 새긴 바위이다

원래 이 바위 바로위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1972년 안동댐 건설로 이곳에 옮겨졌다 

선성현객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창건연대는 잘 알 수 없으며, 1712년(숙종 38) 현감 김성유(金聖遊)가 개건(改建)한 것을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예안면 서부리에 있던 것을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건물은 정당 3칸, 양 익사(翼舍) 각각 3칸과 건물 사이의 간살 1칸씩 모두 정면 11칸이고, 측면은 세 건물 모두 3칸이다. 정당 정면은 벽체 없이 개방된 퇴칸으로 남아있고 내부는 전돌을 깔았다. 양 익사는 정당쪽 1칸은 앞쪽 1칸을 툇마루로 남기고 뒤로 2칸통을 꾸몄으며, 나머지는 삼면이 개방된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는데, 양 익사의 온돌방만은 각주로 되어있다. 정당의 상부가구는 초익공의 2고주 5량가로, 대량 위에 포대공을 짜아서 종량을 올리고 그 위에 제형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놓았다.
양 익사는 초익공의 5량가이고 대량 위에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워 종량을 놓고, 종량 위는 대청과 방이 면하는 청방간에는 제형 판대공을, 나머지는 키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쳤다.
지붕은 정당이 양 익사보다 다소 높은 맞배지붕이고, 양 익사는 정당과 맞닿는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하였으며, 양 단부는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개건할 당시의 평면형식 및 상부가구 등이 비교적 잘 간직된 조선 후기의 객사건물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 인용)

월영교까지 왔으면 꼭 보고 가야할 문화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