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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

( 상주 여행 ) 전 사벌 왕릉,화달리 3층 석탑

空空(공공) 2016. 6. 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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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에서 정기룡장군의 묘소 위치를 물었는데 가르쳐 주신곳이 여기다

이곳은 전 사벌왕릉인데... 충의사와는 약 1KM 떨어져 있다

사벌 왕릉이 있고 그옆에 보물 117호인 통일시대 석탑인 3층 석탑이 있고

그리고 왕릉 신도비, 사벌왕이 시조가된 상산 박씨가의 재실이 있다

( 사벌 왕릉 )

사벌왕릉은 사벌면 화달리 둔진산 남쪽 기슭 보물 제 117호로 지정된 화달리 삼층석탑 동북편에 위치한 거대한 고분이다. 왕릉이라고 전하나 정사에 기록이 없어 누구의 묘인지 추정하기 어렵다. 신라 54대왕 경명왕의 다섯 번째 왕자 박언창의 묘라는 전설이 전하는데, 박언창은 사벌주의 대군으로 책봉되었으나 후에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왕으로 11년간 다스리다 견훤의 침공으로 패망하고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삼층석탑 옆에 왕릉에 속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석탑의 서북 편에는 상산 박씨가에서 건립한 재실이 있다. 현재 능 앞에 세워져 있는 모든 석물은 오래된 것이 아니며 신도비의 건립연대는 1954년이다. 

* 문헌에 나와있는 전사벌왕릉에 대하여 *

전사벌왕릉이 언급된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군읍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옛 사벌국의 성이 병성산에 있고 이 성의 곁에 있는 언덕에 우뚝하게 솟은 고분이 있어 사벌왕릉이라 전해오고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주군읍지》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만 위치가 “성의 북편 9리쯤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 다르다. 일제강점기의 문서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사벌면 화달리 달천부락에 사벌왕릉이라 칭하는 능의 전면에 상석, 망주석, 양마석, 등대석, 비석 등이 있다. 고분의 높이 9척 5촌, 직경 9간이며 사벌왕은 신라 경명왕의 둘째로써 상산 박씨의 비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누구의 왕릉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 대한민국 구석 구석에서 )

 

 

( 화달리 3층 석탑 )

*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화달리 3층석탑 *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7호로 지정된 전체높이 6.24m의 석탑이다.   

탑은 여덟 장의 마석 한 긴 돌로 얽어 짠 지대돌 위에 석탑을 건립하였는데 기단부는 단층으로서 하층기단면석을 생략한 형식이다. 상층기단면석은 여덟 장의 돌로 조립되고 각면에 양우석과 중앙 일장주가 정연하다. 상대갑석은 3장의 돌로 조성되고 갑석부연이 마련되고 상면은 경사로 합각이 뚜렷하며 중앙부에는 일단의 높직한 각형 받침이 각출되어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 1매식으로 되었는바 각층 옥신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다. 각 옥신석의 체율감은 통식을 따라 이루어졌다. 초층과 2층의 옥개석은 옥석 받침이 5단이고 추녀에는 낙수면이 음각되지 않았다. 상면에는 일단의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그 위층의 옥신을 받고 있는데 3층 옥개석은 받침이 4단이며 상면에는 원호의 몰딩과 1단의 낮은 각형 받침으로 그 위의 노반을 받치게 되어있고 상륜부는 노반석부터 일부재도 남아 있지 않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낙수면이 평박하고 사방 합각의 선이 예리하며 직선의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 화달리 3층 석탑의 조성 시대 *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의하면 “사벌면 화달리(달천)에 석탑이 있는 바 탑의 높이 20척, 기부 2간 사방의 3층석탑이다. 탑의 밑에는 높이 3척 어깨 넓이 1척 2촌의 석불좌상이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벌면 화달리 둔진산 남쪽에 위치하고 부근의 지형으로 미루어 이곳에 남향사찰이 건립되었던 가람의 자리로 추측된다. 

또한 탑의 구조를 통해 조성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데 이 탑의 탑신부에 있어서 옥개 받침이 각 층이 동일하지 않고 삼층은 사단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옥신받침과 기단갑석상면의 탑신 받침도 1단으로 약화되었다. 이러한 점을 토대로 이 탑은 8세기에 조영된 정연한 석탑형으로 시대가 하강된 9세기경에 조성된 것이라 추정된다.

                                             ( 대한민국 구석 구석에서 )

재실은 문이 잠겨져 있어 들어 가지 못했다

문화재에 내 마음이 스며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