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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空空)의 시선

인상 깊은곳/고택,고건축물

( 대구 근대로의 여행 )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空空(공공) 2018. 7. 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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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고택은 서너번은 온곳인데 포스팅하는건 처음인것 같다.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이상화 시인은 잘 몰라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시 제목은 누구라도 한번은

들어 보았을것이다

 

대구 근대 골목길 중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인 이상화고택은. 이상화 선생이 1936년부터

1943년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교남학교(현재 대륜고등학교) 교가 가사의 문제로

가택 수색을 당하여 자신의 시 원고를 모두 압수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이상화기념사업회의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하여, 대구시는 그동안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하였.

 

이상화(李相和, 1901~1943) 호는 상화(尙火), 대구 출생. 경성중학교 3년을 수료하고(1917) 그 해 강원도 일대를 방랑했다. 이상화의 작품 활동은 그가 향리 친구인 현진건의 소개로 참여한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그의 작품 활동은 대략 초기에는 <백조> 그룹 등과 함께 하면서 "나의 침실로"와 같은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1926년경을 고비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암흑가의 민족 시인이자 민중 시인,저항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여러 차례 감금되는 생활을 하였다. 백기만이 펴낸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16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1926년 6월, <개벽> 70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들 수 있다.             ( 이상화 기념 사업회에서 인용 )

 

대구에는 고택뿐 아니라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상화 선생이 젊은 시절 걸어 다녔다고 하는, 달서구 유천교에서 상인동 임휴사까지 이르는 약 2.5Km의

길을 ‘상화로’라고 부른다. 수성못과 달성공원에 이상화 시비가 건립되어있고, 두류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또한 그가 교사로 근무하였던 교남학교에는 그가 작사한 교가비가 건립되어있다

 

느린 우체통은 1년뒤에 배달된다

 

고택 안쪽의 게산예가에서는 터치스크린 화면을 통하여 근대문학, 음악, 미술문제를 풀어 볼 수 있고

전자방명록도남길 수 있다.

영상관에서는 계산동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삶을 상영하고 전시실에는 사진과 엽서를 통하여

 대구의 근대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상화고택 바로 앞에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하여 국권회복을 꿈꿨던 대구 출신의 민족 자산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있다. 서상돈 선생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많은 재산을 내놓았고, 일본에게 1,300만원이라는 빚을 진

우리나라가 이를 갚지 못하면 망한다고 생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였다.

국채보상운동은 신분을 초월하여 전국민 운동으로 확산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서상돈 선생의 고택은 인접한 고층 아파트로 인하여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현재는 사랑채와 별채 사이의

통로를 통하여 출입이 가능하다. 

 

서상돈은 조선 고종 때의 민족운동가 이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7년 대구의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는 등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의 고택은 200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복원되어, 이상화고택과 함께 중요한 거점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대구 중구청 소개글에서 인용 )

 

시민운동으로 상화 고택이 도심의 개발에도 이렇게 보존이 되고  운영되어 정말 다행인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으로 거듭 났으면 한다